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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 여섯 살 막내딸에게 읽어 주려고 이 책을 샀다.
큰 딸 작은 딸은 학교로 막내딸은 유치원으로 보내고 모처럼 한가한 오후에 택배로 책을 받았다.
책 표지만 봐도 행복이 몰려와 빨리 책장을 열었고 첫 장부터 눈물이 흘렀다.
오래 잊고 있었던 그림들이 내 안에서 스며나오기 시작했다.
10년전 큰아이를 임신해서 배가 가득 불렀던 그때로 돌아간 듯 마음이 뭉클해졌고 12월에 임신해 다음 해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매일매일 감사했던 기억들이 해일처럼 밀려와 솟구치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매일 배가 더 불러오고, 뱃속의 아이가 더 많이 움직이면 난 행복에 겨워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목소리로 뱃속 아이에게 말을 건네곤 했었다. “아가, 네가 엄마 아가로 와줘서 고마워, 사랑한다, 사랑해. 건강하게 만나자”
최숙희 동화작가의『너는 기적이야』는 아홉 달을 뱃속에 품어서 처음 세상에 나온 아이를 만나서 그 아이가 성장하는 순간 순간에 엄마들이 느끼는 감동과 생각들을 담고 있는 그림책이다.
2011년도에는 행복한아침독서 추천도서로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내가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느꼈던 마음과 성장하는 아이들을 보는 감동적인 순간이 그대로 그려져 있다.
큰아이가 태어난 그 순간은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큰아이를 품에 안고 말했었다. “아가, 너 일줄 알았어, 엄마는 벌써부터 알았단다. 엄마에게 오느라고 힘들었지? 이제 엄마가 우리 아가 아프지 않게 해줄 거야. 엄마만 믿어. 사랑한다, 사랑해. 우리 아가.”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눈물을 쏟았었다. 꿈만 같았었다.
그런데 정말 까맣게 잊고 살고 있었다. 그렇게 감사하고 소중했던 순간들을, 단 한 번뿐인 추억들을 모두 잊고 살았었다.
처음 옹알이를 하던 날, 처음 기었던 날, 기어가서 책을 뽑아서 혼자 보던 날, 베란다까지 데굴데굴 굴러가서 걸레를 입에 물며 놀던 날, 처음으로 “음마” 하며 나를 불러주던 단 한 번뿐인 기억들 까지. 어쩌면 그렇게 잊고 살수가 있는지. 책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갓 태어난 큰아이를 보는 듯해서 감사했다.
내게 기적 같은 기쁨을 알게 해준 큰딸은 이제 열 살이 되어 엄마에게 말대꾸하고 눈도 흘기는 아이가 되었다. 어떤 때는 10년 전 그 아이가 맞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내 자신도 10년 전 그 때 그 엄마가 아니었다. 내 아이로 태어나 내 옆에 있어주는 그 존재감만으로도 감사할 줄 알았던 그 때의 내가 아니었다.
딸아이는 변함없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이 세상 하나 밖에 없는 보석 그대로인데 나는 가치 없는 큐빅을 대하듯 함부로 대해왔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넌 도대체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니? 너 엄마 딸 맞니? 내 딸 아닌 것 같다‘. 하면서 딸아이 마음을 아프게 하고 빛을 잃게 만들었었다.
딸아이가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지금 바쁘다며 나중에 나중에를 연발 했었다. 엄마 품도 두 동생들에게 빼앗기고 혼자 눈물 찔금거리면 달래주지는 않고 다 큰 게 징징거린다고 소리나 질러대던 지난 일들이 송곳처럼 가슴을 후볐다. 엄마가 아프지 않게 해주겠다던 처음 태어난 그 순간의 다짐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이다.
오늘은 그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큰언니라는 이유로 마음 아프게 했던 큰딸에게 10년 전 그때의 마음을 담아 편지라도 써야겠다. 다시 한 번 큰아이에게 내 딸로 와주어서 고맙다는 말과 건강하게 자라주어 또 고맙다고 써야겠다. 너의 엄마가 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맙다고 써야겠다. 그리고 “내 딸아 사랑한다, 사랑해” 라고 전해야겠다.
유아용 그림동화책 한 권이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할 수도 있구나 싶었다. 지난 10년을 기억하게 했고 반성하며 뒤 돌아보게 했다.
금산도서관 이용자 김윤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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