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완주 화암사 (花岩寺)
오늘은 정말 아름다운 산과 절을 동시에 오르고 보고 왔습니다.
대부분 사찰은 옛날과 달리 절 입구까지 차가 들어올 수 있도록 길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차를 몰고 갈 수 있는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북 완주군 경천면 불명산(佛明山)기슭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금산사의 말사인 화암사는 조금 색다릅니다.
입구 주차장에서 내려 등산로 같은 자연 산길을 20여분간 걸어 올라가야 하는 길도 오솔길이지만 눈이 내려 다져진 산길은 미끄러워 주의를 하지 않으면 넘어질지도 모른다는 강박감에 다리에 힘을 주고 한발작한발작 옮겨야 했습니다.
워낙 산속인지라 오르는 길도 외길입니다. 공사를 위한 임도(林道)가 있지만 일반차량은 출입금지 되어 있습니다.
입구에서는 절도 보이지 않고 단지 푸른 간판에 「화엄사」라는 글자와 화살표 방향만이 절이 있음을 알려 줄 뿐입니다.
차에서 내려 등산화로 갈아신고 장갑을 끼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구두 신고 산행은 불가능 할 것 같습니다.
불명산 오르는 등산로를 겸하는 이 진입로는 인공 조형물이 별로 없이 그저 산길 자체입니다. 단지 작은 개울을 건너는 곳에 시멘트 전신주 5개를 묶어 다리를 만들고 또 한곳은 비행장에서 쓰는 철제 발판을 깔아 물길을 건너게 만들었습니다.
오르는 돌계단, 얼음 사이 사이로 따뜻한 햇살 받아 물이 흐르고 있습니다.
‘졸졸’소리내며 작은 물줄기는 아래로 아래로 흐르고 산위로 불어오르는 바람은 차가워진 귀에 손이 가게 만듭니다.
‘타박 타박’발걸음을 천천히 옮깁니다.
바쁠 것 없는 산행길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정겹습니다.
얼마쯤 오르니 산길에는 어울리지 않는, 150여개 계단으로 이어지는 철계단이 시야에 들어옵니다. 지자체에서 만든 것입니다.
작은 폭포를 옆에 두고 오르는 길목을 만든 것입니다.
그 옆으론 예전에 오르던 가파른 돌계단이 녹쓴 파이프 안전대와 함께 남아 있었습니다.
어느 공사장 가설 통로처럼 보이는 철계단으로 오르지 않고 옛길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그곳이 휠씬 산길다웠기 때문입니다.
조금 가파르고 돌아오르는 길이지만 오른 후 저아래 산자락을 내려다 보는 감회는 깊은 숨을 몰아쉬는 고통보다 더 즐겁게 느껴집니다.
모든 나무는 앙상한 가지만 남았습니다.
산속도 휜히 보입니다. 응달엔 흰 잔설이 그대로 남았고 먹이 찾는 멧새떼들이 이곳 저곳 날아 듭니다.
철계단을 뒤로 하고 조금 오르면 사찰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화암사에는 그 흔한 일주문도 사천왕문도 없습니다.
적묵당은 지금 보수 공사 중이였습니다.
추운 날이였지만 적묵당 위에 가설 지붕을 만들었고 그 안에서는 목수들의 바쁜 손놀림과 기계톱소리가 적막한 산사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우선 맞이한 것이 불명산 화암사 (佛明山 花岩寺)란 현판이 걸려 있는 우화루(雨花樓)였습니다.
우화루는 이사찰의 강당에 해당하는 곳으로 주불전인 극락전(極樂殿)앞에 위치하고 경사진 지형을 적절히 이용한 반 누각식(半 樓閣式)으로 안마당에서 보면 단층, 밖에서 보년 중층인 구조입니다.
자연석 허튼 층 쌓기의 높은 석축위에 자연 초석을 놓고 길고 짧은 민 흘림 기둥을 세우고 귀틀을 짜올려 하층 축부(軸部)를 구성한 특이한 구조였습니다.
보물 663호 지정된 화암사 극락전은 국내 유일의 하앙식(下昻式)건축물이랍니다.
즉 지붕의 하중을 받는 공포(拱包)위에 하앙을 덧댄후 도리를 더 얹을 수 있게 함으로써 서까래를 건물 바깥쪽으로 길게 뽑을 수 있게 만든 백제 건축 양식이랍니다.
적묵당이 한창 보수 공사중이어서 사찰의 중정은 어수선했지만 극락전 앞에 누워 있는 한 마리의 개가 외부인의 방문을 꼬리를 흔들며 맞아 주었습니다.
극락전 앞 안내문을 읽어보니 동종에 관한 얘기가 있었습니다.
극락전 안에는 동종이 모셔져 있는데 높이는 1백 7㎝이고 용 모양의 고리에 연꽃문양과 꽃잎띠가 새겨져 있는 이 동종은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니고 있답니다.
원래의 종은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렸고 다시 종을 만들었는데 일제 강점기 때 일본 헌병이 무기로 쓸 쇠붙이를 얻기 위해 화암사로 몰려 오자 종이 스스로 울려 스님들에게 알렸단다.
다급한 스님들은 종을 땅에 묻어버렸다는데 해방이 된 후에야다시 꺼내 오늘에 이르고 있다니, 어찌 가슴 아픈 일이 아니겠습니까?
스스로를 구한 종 모습이 대견스러워 보였습니다.
화암사는 큰 사찰이 아닙니다.
산아래서 쳐다보면 산만 보일뿐 절집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습니다.
극락전, 공사중인 적묵당 우화루로 이어지는 좁은 공간은 하나의 동선으로 연결시켜줍니다.
하지만 웬지 모르게 그속에 빠져듭니다.
우선 조용함이 좋고 앞을 보아도 산이요. 뒤를 보아도 산입니다.
오직 보이는 것은 고개들어 본 하늘 뿐입니다.
이 적막한 산속에서 이런 사찰을 만날 수 있다니 잔잔한 감동이 입니다.
머리 깎고 수양은 못해도 마음의 때라도 벗어 던진 듯 온몸이 가볍습니다.
왜 그럴까?
화암사는 소박한 절집의 향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극락전 빛 바랜 기둥을 어루만져 봅니다. 손끝에 머무는 나무결 촉감에 세월이 숨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이렇게 가까이에서 20여분이면 올라올 수 있었지만 그 옛날 저 도로 입구부터 걸어오려면 얼마나 먼거리였는가?
화엄사를 뒤로하고 임도(林道)를 따라 내려온 오르는 길에 비하면 넓고 평탄한 길이지만 산허리를 파헤치고 잘라 만든 길은 불명산에 큰 상처를 남겼습니다.
절 보수 공사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만든 길인지는 몰라도 그정도의 비용이면 헬기를 이용하는 방법도 있었지 않았을까?
길 주변엔 나무가 잘려지고 산사태가 나고 콘크리트로 바닥을 포장했습니다.
개발의 미명아래 자연이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산자락엔 두릅나무가 즐비하고 새들이 날아들건만 옛모습이 아닙니다.
오르는 차도, 사람도 없습니다.
계곡으로 올라 임도를 따라 내려오니 오가는 시간만 한시간이 휠씬 넘었습니다.
등산도 하고 절도 보고 마음도 씻고…
이런 것을 보고 일거 삼득이라 하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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