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우석박사와 ‘빨리빨리’
요즘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이 우리 주변에 떠돌고 있지만, 가장 큰 이슈는 아무래도 황우석박사와 관련된 얘기들이 아닌가 싶다.
이 난(欄)을 통해 몇차례 황우석 박사를 국민적 영웅으로 묘사했던 적이 있는 나로서는 참으로 난감한 일이지만, 작금의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본다면 -추리소설을 보는 듯한 복잡한 얘기들은 모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2등은 필요없는 무한경쟁의 세상에서 한발 앞서 나가려는 욕심으로 저지른 ‘인위적 실수’>
<이론적으로는 전세계의
과학자 모두가 인정하는 일이지만, 실제 실험으로 증명해야 처음으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를 수 있다는 ‘조급함’과, 지금은 조작을 하지만 결국 몇
개월 내에 마무리를 깔끔히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의 합작품>
내가 일전에 김대중정부에서 정보통신부장관을 지낸 한 대학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분은 자신이 ‘세계 최초’로, 그리고
‘최단시간 내에’ 전국에 초고속통신망을 깔아 IT업계의 고속도로를 뚫은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면서 그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과 성과를 털어
놓았다.
강연 중에 그 분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나라가 종래의 산업화시대에는 일본이나 독일의 근면하고 성실하고 논리적인
성격으로, 다시 말해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국민성을 당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한발짝이라도 앞서 나가야 성공하는 IT의 세계에서는 우리의 특징인 ‘빨리빨리’와 ‘대충대충’이 좋은 장점으로 부각되면서 일본, 독일과 같은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심지어는 일부 분야에서는 앞서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는데, 요즘 황우석박사 파동을 보면서 기초를 튼튼히 한 뒤에 차근차근 올라가는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기’ 와 ‘빨리빨리’ 사이에 어떤 방식이 더 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흑백논리의 함정
우리는 좌와 우, 내편과 네편, 있는 자와 없는 자,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을 구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런 생각을 ‘흑백논리’ 혹은 ‘이분법적 사고’라고 얘기하며 우리가 지양(止揚)해야 할 생각의 함정 중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지적하고 있지만, 성인군자가 아니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군가가 지적해 주기 전에는’ 자신이 ‘흑백논리’에 빠졌다는 것을 알아차리기조차 힘들 정도로 우리는 이 ‘이분법적 사고’에 익숙하다.
나 자신도 이런 성향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기에, 아군(我軍)은 좋은 사람이고, 좋은 사람은 성격이나 생각, 행동 등 모든 면에서 좋게 생각하게 되지만, 적군(敵軍)은 그 반대로 인식하는 오류를 종종 저지르곤 한다.
결국 흑백논리란 ‘눈에 씌어진 콩깍지’는 한두가지의 작은 사례를 기초로 큰 테두리를 만들어 내 생각과 내 생각의 대상을 그 틀에 가두어 버린다는 데 문제가 있을 것이다.
내가 군대시절, 중위계급장을 달고 경상도 산골에서 연대 의무중대장이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을 때 만난 선임하사는 경상도 출신의 중사였다.
하루는 이 친구와 회식 자리에서 술을 한잔 하고 있는데, 그가 이런 말을 한다. “내 아버지가 전라도 사람에게 사기를 당한 적이 있다. 따라서 전라도 사람들은 모두 나쁜 인간들이다.”
이제 막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세상에 나와 물정을 잘 모르던 시절에 삼단논법의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황당한 얘기를 듣고 나는 잠시 혼란에 빠진 적이 있다.
1981년의 얘기니까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동서간의 갈등이 그리 크지 않던 시절이었는데, 그 친구는 정말 일반화하기 어려운 한가지 사례를 들어 모든 전라도 사람들을 적군으로 ‘일반화’해 버린 것이다.
이런 현상을 전문가들은? ‘과일반화(過一般化)’라고 표현하는데, 심리학 분야에서는 이런 ‘흑백논리’나 ‘과일반화’와 같은 비합리적 사고방식을 스트레스의 주요 원인으로 생각하고 있고, 이런 ‘비합리적 사고방식’이 심각한 경우에는 불안장애나 우울증과 같은 심리적 장애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쉽게 이런 흑백논리에 빠져들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보호노력의 하나이거나 ‘내가
과속운전하면 운전을 잘 하는 것이고, 남이 과속하면 죽으려고 환장했다’는 식의 자기기만의 방식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세상에 100%는 없다
그렇지만, 누구나 인정하는 나쁜 놈도 ‘속마음을 이해하고 보면’ 인간적이고 또 안쓰러운 구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쁜 일을 한 사람 중에도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심약한 성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일을 저질렀다든가, 잠깐의 욕망으로, 다시 말해 ‘눈에 콩깍지가 씌어서’ 착한 마음이 잠시 가려져 악당노릇을 했다든가 하는 예가 우리 주변에는 많을 것이다.
결국 ‘100% 착한 사람’과 ‘100% 악한 사람’은 없다는 것인데, 황우석박사 역시 100% 영웅도 100% 사기꾼도 아닐 것으로 나는 믿는다.
세계적 문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도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거나 나쁜 것은 없다. 다만 우리의 생각이 그렇게 만들 뿐이다.”라고 했다는데, 황박사는 -물론 없는 줄기세포를 있다고 거짓 보고를 한 사람이기는 하지만- 과(過)와 함께 공(功)도 큰 사람이다. 증명된 업적만 보아도 체세포 복제배아를 배반포 단계까지 키우는 기술을 개발했고, 복제개 스너피를 만들지 않았는가.
그리고 후일담으로 세간에 흘러나오는 확인되지 않은 여러 가지의 얘기들 -인간적으로 결점이 있다든가, 어떤 세력의 사술(詐術)에 걸렸다든가, 혹은 정치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다든가 등등- 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을 수도 있는 노릇이지만, 황박사의 결점을 인정하는 한편 그 분의 장점을 부각시켜 객관적이고 공정한 평가를 내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책임을 맡기는 사회적 절차가 없는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다.
흑백논리를 벗어날 수 있다면
현재 국민들의 반응은 황박사를 지지하는 측과 비난하는 측 사이에 대화의 여지가 별로 없는 것 같고, 심지어는 매스컴마저도 황박사의 입장을 지지하는 편과 비판하는 편으로 나뉘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하나의 사물이나 한 사람을 손바닥 뒤집듯이, 흑백논리로 판단하지 않고 다양하게, 그리고 여러 관점에서 보고 이해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점에서는 이렇고, 저런 점에서는 저렇다’는 식의 판단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이런 식의 판단은 ‘복잡한’ 계산을 요구하기 때문에 나 자신에게 힘든 일이고, 생각에 따른 행동의 방식을 결정하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단계를 거쳐야만 우리의 사고도 더욱 성숙할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해해야 한다.
황교수와 연관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서, 우리도 이 사건을 계기로 해서 조금 더 성숙한 사고를 가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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