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성직생활을 지망하고자 준비할 때였다.
우연히 시골에서 만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기왕에 성직에 입문하기로 정하였다니 꼭 부탁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성직자가 되어서도 자주 시장에 가라는 것이었다.
장터의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면서 어깨 너머로 들려오는 세상 사람들의 애환에 늘 귀를 기울일 줄 아는 겸허한 사제가 되라고 했다. 지금 그분의 이름은 잊혀졌지만 그 당부만은 지금도 필자의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나에게 또한 겸허를 가르치는 물건이 있다.
서재의 한쪽 칸을 차지하고 있는 이 물건의 이름은 ‘계영배(戒盈杯)’ 라 한다.
몇 해 전 경기도 이천에서 열리고 있는 ‘세계도자기 엑스포’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넓은 공원 안에는 이곳 도자기의 고장에서 작품 활동을 하는 많은 도예가들의 부스가 가지런히 배열되어 있었다.
그중 한 부스를 담당하고 있는 장인 한분을 소개받았다. 이분은 잠시 후 우리 일행을 자택이자 작업공간인 곳으로 초대하였다.
아담한 한옥집 전시실을 들어가니 유리로 만든 진열장 안에 다양한 작품들이 놓여 있었다.
마치 동굴 안에 주렁주렁 달려있는 종유석에서
흘러 떨어진 듯한 무늬를 한 백자 항아리도 있었다.
자신만의 독특한 유약으로 개발한 무광택 백자라고 힘주어 말하였다.
전위 예술가가의 손을 거친 듯한 파격적인 작품도 눈에 띄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장에 들른 것에 감사하다며 도자기 한점씩을 선물로 드리겠다고 하였다.
작은 나무 상자 안에 곱게 포장한 작품을
가져왔다.
바로 전설의 ‘계영배’를 자신의 독창적인 기술로 재현했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의 손에 선물을 들려주면서 말을 이었다.
“계영배는 원래 거상 임상옥의 스승이 전해준 물건입니다. 그분은 임상옥에게 ‘상술(商術)’이 아니라 ‘상도(商道)’를 가르쳐 주신 분이지요. 그분은 임상옥에게 딱 한 가지 선물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 ‘계영배’입니다. 앞으로 임상옥에게 세 번의 위기가 닥칠 터인데 그때마다 이 ‘계영배’의 의미를 생각해서 자신을 비우면 화를 피하게 될 거라고 말했답니다.
실제로 임상옥은 인생의 말미에 높은 관직도 오르고 재산도 많이 모았지만 자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고 모두 사회에 환원했습니다. 그 결과 당시 사회에 몰아친 엄청난 파국을 모면할 수 있었지요.”
설명을 마친 후 작가가 ‘계영배’ 안에다 대략 3분의 1정도 물을 따랐다.
처음엔 아무 이상이 없었다. 다음번엔 욕심(?)을 부려
거의 잔 부리까지 물을 따랐다.
잔 밑바닥에 난 구멍으로 물은 한 방울도 남지 않고 모조리 빠져버리는 게 아닌가!
희한하게도 이 술잔에 따른 술이 7할을 넘으면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계영배’는 글자 그대로 ‘넘침을 경계(戒盈)한다’는 속뜻을 지닌 잔이다.
‘노자(老子)’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명예와 자기 자신 가운데 어느 것이 더욱 절실한가.
자기 자신과 재물 중에 어느
쪽이 훨씬 소중한가.
탐욕을 채우는 것과 욕심을 버리는 것 중 어느 편이 근심을 유발할까.
따라서 애착이 지나치면 필시 소모하는 바가 커지고 재물을 많이
간직하면 반드시 크게 잃기 마련이다.
자기의 분수를 알면 욕되지 않고 그칠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
이와 같아야 오래도록 편안할 수 있다.
오늘도 묵묵히 인생의 도리, 뭇 사람을 살리는 길을 가르치는 계영배를 가만히 쳐다본다.
생(生)이 다하는 순간까지 그 교훈 잊지 말고
살기를 다짐하며…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범인 금산군수, 정부 공모사업 준비 총력 대응 지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