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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512 池小有天(지소유천) … 6部-

“알았습니다 글을 드리지요”

“그러시면 제 메일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김 부장과 헤어지고나서 바로 글을 김 부장 메일로 보냈다

「지천명을 아는 나이

                             .........장지천

나이 오십을 공자님은 지천명이라 하셨다. 하늘에 명을 아는 나이 누구나 이것의 문자적 해석을 할 수가 있고 입버릇처럼 나이 오십이 되면 지천명이라는 말을 즐겨 쓰고 있지만 이를 알고 행하는 사람은 별로 볼 수가 없다.

장종안
남일우체국장

지천명의 문자적 해석이야 누구나 하고 있는데 정말로 우리는 이 문자적 해석에서 벗어나야 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나도 간신히 이 뜻을 알 수가 있었다. 이는 배워서 안것도 아니고 인생의 길에서 어려운것도 만나고 고뇌의 삶을 겪어보기도 하고 정말로 밑으로의 삶을 체험하고 나서야 얻어지는 지혜였던 것이다.

그것을 알기전에 먼저 자연에 놓여있는 모든 것에 대해 감사할줄 아는 마음이 일어나야 했다.

사소한 일이지만 마당에 여름만 되면 돋아나는 잡초를 보고 귀찮아 하지 않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마당에 아니면 텃밭에 잡초는 인간이 심어논 것이 아니라 신(神)이 심어놓은 생물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인간이 심어놓은 곡식들은 비료를 주고 약을 해주고 하여야 제대로 성장을 하는데 이놈들은 그렇게 제거를 할려고 해도 또나고 또나고 하는 것이다.

이 작은 일에서부터 인간은 하늘과의 투쟁을 하고 있는 것이며 이 투쟁을 하는한 지천명에 진정의미를 알 수가 없는 것이다.

하늘이 하는 것은 자연이다. 자연은 무엇인가 스스로 그렇하게 되는 것이 자연인 것이다. 스스로 그러하게 되는 것이 자연이라면은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자연은 하늘이 하는것이고 그것이 곧 천명이니 지천명의 문자적 해석에서 벗어날려면 자연의 이치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스스로 그렇게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하나도 없다 행하는 것 마다 자연에 반하는 일을 하고 있으니 어디 지천명을 안다고 할 수 있는가.

저 물을 봐라 낮은 곳으로 한없이 흘러가 대해를 이룬다. 낮은대로 임하소서의 끝이 대해인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언제고 어릴 때부터 높은대로 임하소서 가 머릿속에 가득차있고 한없이 반복암시를 받아오면서 살다보니 그것이 삶의 일부분이 되어있어 죽을 때 까지 그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잘나간다고 우리가 생각하는 사람들 모두들의 행위를 보면 철저하게 남을 죽여야만 자신이 살수가 있는 일을 하고 있다.

결국은 나의 자아실현을 위해서 남의 자아실현을 깨트리는 것은 자연이 아니고 인위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정의가 될 수가 없는것인데 우리는 그 것을 위해 목숨을 걸고 투쟁을 하고 있으니 어디 이 삶이 자연이 될수 있으며 지천명의 세상이 될수 있단 말인가.

인생을 살다가 한번쯤은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지천명을 떠올리며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자 할 때 우리의 삶은 지금보다 더 윤택해지고 너그러워 질 것이다.

그 속에서 남을 배려하고 아껴주면서 스스로가 자연이 되어간다고 하면은 산속에 나무들이 큰놈 작은놈 잘난놈 못난놈 할것없이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아름다운 지천명의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언제고 낮은대로 임하여 저 큰 대해를 이루는 물을보고 한번쯤은 우리가 삶을 반추해봐야 할지 않을까 한다

자연은 아름답고 위대하고 그것이 지천명을 아우르는 것 이다」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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