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생의 빚을 갚는다는 것 -
고대 인도 힌두교의 경전에 의하면 사람이 100년을 산다고 가정할 때 인생을 4단계로 나누는데, 첫 25년은 자라면서 세상에 빚을
지는 시기, 두 번째 25년은 그 빚을 갚는 시기, 그리고 마지막 50년은 종교적 의미를 가진 시기라고 한다.
종교적 의미를 갖는 시기는 사람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기 때문에 제외하더라도, 수천년 전에 씌어진 책에서 인생을 빚을 지는 시기와 갚는 시기로 나눈 것은 지금도 훌륭히 통용될 얘기일 것이다.
첫 25년은 사람이 태어나 어른이 될 때까지 누구에겐가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의미이고, 3·40대에 그 빚을 갚는다는 것도 옳은
말이지만, 요즘 세태가 너무나 각박하다 보니 어른이 되어서도 그 빚을 갚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어른이 되어 결혼하고 아기를 낳아 기르는 것도 그 빚을 갚는 행위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살기에 바쁜 젊은이들이 결혼도, 출산 및
육아도 미루는 것을 우리는 주변에서 흔히 보게 되는데, 이런 젊은이들을 힌두교식으로 말한다면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라고 할 수도 있겠다.
특히 여성들 중에서 ‘시집가서 고생하며 가전제품 하나씩 사고 집을 한칸씩 늘리며 아기 낳아 가정을 만들고 꾸려나가겠다’는 생각보다는
‘그 고생을 하느니 차라리 일과 결혼해서 혼자 살겠다’는 사람의 비중이 늘어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역시 빚쟁이에 쫓기는 사람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회의 발전방향이란 것이 몇 사람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들이 빚을 지게 된 과정 자체가 그들도
피해자라는 의미이고, 따라서 그들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 마을-
한동안 농촌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지 않는다는 말들을 많이 했는데, 요즘에는 많은 농촌에서 아기울음소리가 심심치
않게 들리고 있다.
젊은 여자들이 도시에서도 결혼을 잘 하려고 하지 않는데, 하물며 농촌에서 밭일하려는 여성이 있기를 바라기는 그야말로 연목구어(緣木求魚)였지만, 지금은 외국에서 우리 농촌으로 시집 온 여성들이 농촌의 빈 자리를 메워 나가기 때문일 것이다.
소아과의사로 15년 넘게 지역에서 진료를하다 보니, 언제부터인지 일본 아주머니들이 아기를 업고 병원문을 들어서더니 이어서 중국/필리핀/태국과 베트남 아주머니들도 만나는 횟수가 점차 늘어났고, 이렇게 외국에서 한국으로 시집 온 사람들을 우리는 『결혼이주여성』이라고 부른다.
이주여성들이 점점 많아지는 현상은 농촌마을 금산뿐만 아니라 대도시를 비롯해서 우리나라 어디에서나 흔해져, 이제는 이들이 아예 자연스런 우리의 이웃이라는 생각마저 갖게 되었지만, 일상을 사는 사람들에게 이들은 아직도 이방인일 것이고, 이들의 생김새가 조금 다르고 우리말을 사용하는 어투가 다소 어눌하다는 것이 은근히 우리의 치기어린 우월감을 부추기는 것을 숨기기 어려운 것 또한 사실이다.
이들 결혼이주여성들은 물론 개인적으로 자신의 꿈과 행복을 좇아 이 나라에 들어왔을 테지만, 이들이 처한 어려운 환경에 대해 우리가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아무리 길어도 20년 이내에 우리는 지금 유럽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종폭동이 남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이주여성들의 실태 -
가장 최근에 여성부에서 실시한 이들 이주여성들의 실태에 대한 조사결과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자.
현재 이주여성들의 평균연령은 34세로 남편(41세)과 7살 차이가 나고, 10살 이상 차이 나는 경우도 34%나 된다고 한다.
거주지는 도시:농촌의 비율이 3:1로 도시에 많이 살지만, 인구비율을 생각한다면 농촌에 더 많은 이주여성들이 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국적별로 볼 때 조선족은 주로 도시에, 필리핀/베트남/태국여성은 주로 농촌에 살고 있고, 학력을 볼 때 부부 모두 고졸이 가장 많았다는 것은 이들 이주여성들이 상당한 교육수준에 도달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결혼생활이 원만하지 못해 가정이 해체되는 경우는 중국 한족(28%)이 가장 많고, 다음에 조선족(14%)이지만, 동남아시아에서 온 이주여성들은 비교적 좋은 가정을 이루고 사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는 중국인과 조선족들은 비교적 남녀평등의식이 크게 발달해 있어서 작은 갈등도 참지 못하는 경향이 있고, 의사소통이 비교적 쉬워서 집을 나가더라도 취직에 대한 불안감이 상대적으로 적어서인 것으로 짐작된다.
도시로 이주한 여성의 14%, 그리고 농촌의 45%가 시부모를 모시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 여성들이 시부모를 모시는 것에 대해 부정적이라는 통계와 무관하지 않을 것 같다.
시대별로 보면 80년대에는 통일교와의 인연으로 일본여성들이, 92년 이후부터 조선족과 한족이, 90년대 중반부터는 필리핀/태국/몽골여성이, 그리고 90년대 말부터 베트남과 중앙아시아여성들의 이주가 많은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이들 이주여성들의 본국에서의 경제사정은 중간 정도였고, 90%가 본국에서도 직장을 가진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비교적 우수한 사람들이 국내로 유입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장을 가진 취업자가 60% 가량 되는데, 이 중 음식점 등 서비스업이 가장 많아 52%를 차지하고 있다.
충북 보은에서 2005년 한해 동안 결혼한 205쌍 중 82쌍이 국제결혼이라는 통계가 말해주듯이 이제 우리 주변에서 이주여성에 대한 배려는 단순한 ‘봉사’의 차원을 넘어 ‘의무’의 범주에 이르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행히 최근에 각종 사회단체와 여성부를 필두로 하는 정부기관에서 많은 관심을 갖고 이들 이주여성들을 돕기 위한 많은 활동을 벌이는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한 조치라고 하겠다.
- 금산의 상황 -
2005년 통계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3만여명의 이주여성이 우리나라에 있고, 이 중 금산군에는 160명 가량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는데, 아마도 등록이 되지 않은 사람들도 다수 있는 것으로 짐작되기 때문에 이주여성의 총 숫자는 아마도 200명 정도라고
추정한다.
금산문화원에서는 2004년부터 이들 이주여성들을 위한 『삶꽃문화학교』(교장. 김민우목사)를 운영하면서 매주 두 번씩 강좌를 열어 이주여성들에게 초등학교 저학년 수준의 교과서를 숙지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비단 한국어교육에 그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이들의 가정문제와 문와 풍속이 다른 데에서 오는 오해까지 상담해주고 있는데, 김민우교장과 김경희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받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어 상당한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의 최태호교수가 지속적으로 올바른 한국어의 사용에 대해 강의해주고 있고, 각종 문화단체에서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프로그램들을 펼치고 있다.
이 삶꽃학교에 참여하는 이주여성은 50명 가량으로 이들은 시부모와 남편도 함께 참여하는 프로그램을 통해 한국농촌에서의 적응력을 키우고 삶에 대한 의지를 다지는 중이다.
심지어는 ‘대전에는 이렇게 열성적으로 노력하는 기관이 없다’면서 대전에서 외국인 며느리를 데리고 매주 두 번씩 금산을 찾는 시어머니가 계실 정도로 삶꽃학교에 대한 호응은 대단하다.
(다음주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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