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연재 안용산의 생명의 고향, 금산 여울의 노래
(생명의 고향 금산, 금강여울의 노래 32)

- 그래서 강돌은 둥글다 -

안용산

여울
모르는 사람에게
알려주려고

강가에 도착하니 여울은 보이지 않고
여기저기 돌들만 드러나 있었다.
드러난 돌을 주워 요리조리
그렇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더니
물소리 점점 가까워지기 시작하였다.
세찬 물소리로 부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돌과 물이 부딪쳐야
물살이라고
여울이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다 여울이 무엇이냐고 물어오는 사람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어요.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에서 ‘여울’은 가까이 할 수 없는 말이 된 것을 모르고 있었던 내가 더 한심한 일인지도 모르지요. 불과 40여 년 전만 하여도 마을 앞 냇가에 가면 만날 수 있는 놀이이자 먹거리로 삶의 일부가 되었던 삶터가 여울이었지요.

그런데 ‘여울’이 무엇인지 알 만한 사람들도 모르는 현실에 매우 놀라면서 여울을 설명하기 위하여 강가로 갔어요. 그 사람이 흥얼대는 가수 정미조가 불렀다는 김소월의 ‘개여울’ 가사를 들으면서 여울에 도착하였는데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심은”이라는 개여울 노래말처럼 여울의 본색을 많이 잃고 있는 강가였습니다.

몇 해 전 여울의 세찬 물소리를 기억하고 그 강가로 갔지만 어쩐지 여울의 ‘그 소리’는 들리지 않고 강가에는 온통 ‘돌’뿐이었습니다. 당황하여 난데없이 수석을 찾는 사람처럼 요리조리 찾다가 멀리 강물 속에서 부르는 ‘그 소리’가 있어 고맙고 감사하다는 생각으로 저 소리가 여울이라고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저처럼 드러난 돌에는 없습니다. 거듭 태어나는 ‘새로운 날’을 위해서는 부딪치는 물속 숨은 돌이 있어야 한다고 거듭거듭 말을 하였지요. 그렇게 강돌은 둥글었습니다.

/금강여울의 노래 32을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금산신문  gsnews4700@naver.com

<저작권자 © 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금산신문의 다른기사 보기
icon인기기사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