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 갑니다.
아니 벌써 초겨울의 길목인지도 모릅니다.
달력에 걸린 날짜는 초겨울이지만 지구온난화 영향인지 날씨는 분명 가을입니다.
이산 저산 단풍도 이제야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에 비해 점점 단풍의 계절이 늦어지는 것 같습니다.
단풍의 아름다움은 산에 올라 멀리 바라보는 것이 최고인듯 싶습니다.
이산 저산 골짜기마다 정상에서부터 내려온 울긋불긋한 잎새들은 그야말로 불타는 모습입니다. 장관입니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직접 한잎 두잎 보면 그토록 아름답게 보이지 않는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빨강, 노랑, 갈색으로 어우러진 단풍은 멀리서 바라보는 것이 제일 아름답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가을이 가기전, 아니 저 단풍이 낙엽으로 떨어지기 전 그 모습을 보기 위해 호젓한 산길로 바람도 쏘일겸 드라이브라도 다녀와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 자동차 보다는 느린 자전거 여행이 더 좋을지도 모름니다.
바쁨이 없는 휴일 산책길.
맑은 햇살 내리고 가벼운 바람 부는길.
그 길따라 은빛 반짝이는 두바퀴 자전거위에 자신을 싣고 달려보는 것, 생각만 하여도 가슴이 뻥 뚫리는듯한 기분 입니다.
작은길도 좋다. 넓은길은 더 좋다.
한적한 길이라면 조금은 오르막길도 괜찮다.
페달에 힘을 가하면 되니까. 그래야 운동도 되면서 몸도 좋아할 것이다.
근육이 움직여질 것이다.
자동차 문화에 젖어 걸어 보기 힘든 세상. 걷기를 못할 바엔 자전거라도 타야 하는것 아닌가.
자전거 여행.
지금이 계절적으로 최적인가 싶다.
춥지 않고 햇살 뜨겁지 않고 주변 경치 좋고…
대청댐을 향해 달린다.
신탄진 사거리를 지나 조금 달리니 금강을 만난다.
이곳부터 호반길이 시작된다.
휴일 호반길은 붐비지 않았다.
보조댐 아래로 떨어지는 물살이 햇볕받아 은빛 찬란함을 발한다.
그 아래 강변에 낚시꾼들이 줄을 섰다.
장화달린 긴 우비 같은 옷을 입은채 몸의 반은 물속에 담그고 연신 릴을 낚아채고 돌린다. 견지하는 사람도 보인다.
세월을 낚는지, 물고기를 낚는지 나는 그 지루함에 낚시를 접은지 오래 되었다.
오랜만에 타보는 자전거이지만 곧 익숙해 졌다.
중·고등학교 시절, 40여리길을 자전거로 통학했으니 그때 단련된 근육신경이 아직도 남아 있나 보다.
그때는 신작로라 불리던 큰 자동차길이 포장되지 못해 자갈길이었다.
길옆 자갈을 피해 조심조심 달려야 했다.
큰 트럭이나 버스가 지날때는 가끔 자갈이 튀기도 했다.
그런길 이었기에.
자전거 부품도 견고하지 못했기에 잦은 고장이 많았다.
특히 바퀴 튜브의 펑크가 자주 발생해 때론 먼길을 끌고 수리점까지 가야만 했다.
대개 그리 멀지 않은 길목에 자전거 수리점이 지금의 카센타처럼 문을 열고 있었다.
지금 그때 수리 하시던 분들은 모두 무엇을 하고 계실까?
지금은 자전거 수리점은 보기 힘들고 판매점에서 A/S를 해주는 정도다.
그리고 펑크가 나면 튜브를 수리하는게 아니라 그냥 신품으로 교체해 버린다.
그게 인건비보다 싸기 때문이다. 가장 간단한 경제 이론이다.
그리고 자전거도 동남아산이 대거 수입되고 있어 물가 수준에 비교하면 참으로 싼 편이다.
내가 중학교 시절엔 엄청나게 비싼게 자전거였다.
지금은 어린이용도 많다.
아파트 근처 상가 주변엔 주인없는 자전거도 많다.
그저 타고 왔다가 잊어버리고 놓아 둔채로 가버린단다.
찾으러 오는 아이들이 몇 되지 않는다고 경비 아저씨는 한심 어린 눈빛으로 말씀하신다.
물질의 풍요속에 젖어버린 우리아이들.
잊어버리면 또 사면 된다는 단순한 생각.
돈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우리 부모들의 잘못도 있지 않을까?
자기 세대에서 너무 궁핍하게 살았기에 자식만큼은 풍요롭게 해주고 싶은 심정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버려지는 물건이 너무 많은 요즈음 안타깝게 느껴지는 50대 후반의 걱정이다.
어느 초등교 교사는 아이들 문구용품에 이름 쓴 견출지 부치는 것을 늘 강조한단다. 잃어버림을 방치하기보다 두고 가는 물건을 찾아주기 위함이란다.
물질의 풍요속에 자란 우리 아이들.
모자람 보다 많은 것을 더 보고 자란 세대.
친구들과 뛰고 어울리기보다 방안에서 홀로 컴퓨터 게임에 빠져 있는 아이들.
산과 들, 시냇물에서 놀기보다 피아노, 태권도, 속셈, 미술 학원 등 저녁 늦게까지 학원을 오가는 아이들. 그 틈에 라면, 햄버거, 콜라 등으로 간식을 즐기는 아이들.
늘 내 자식만은 꼭 1등 하기만을 강요하는 극성 엄마들.
나 자신만의 문제라기보다 대한민국 전체의 문제 아닐까?
자전거 바퀴는 멈춤이 없다.
멈추면 넘어지기 때문이다.
호반길을 따라 대청댐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했다.
자전거는 댐 정상까지 오를 수 있어 좋다.
휴게소가 예쁘게 새로 단장되었다.
오르는 계단도 목재로 새로 만들고 가로등 뿐만이 아닌 조명등도 멋지게 세웠다.
햇수가 오래된 조경수 적송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고 주변이 깨끗이 정비되였다. 얼마전 수자원공사에서 단장공사를 마친 모양이다. 홍수기에 비해선 물 높이가 저 만큼 내려갔다.
하지만 대청댐은 호수라기 보다 바다같은 모습이다. 넓은 물. 잔잔한 모습……
단풍진 산자락 아름다운 모습이 물속에 또 하나의 자신을 그려냈다.
마치 거울처럼.
여름 홍수철, 만수된 물을 쏟아내던 수문은 굳게 닫혀지고 콘크리트 구조물만이 덩그런히 햇볕을 쬐고 있다.
단지 발전을 위한 수량(水量)만큼 아래로 아래로 흘려 내려 보내고 있었다. 반대편 산 자락 정상 조금 아래 엔 작은 절, 현암사가 아름다운 대청댐을 바라보고 있다.
물위에 내리는 햇살.
출렁이는 물결에 반짝. 반짝. 눈이 부시다.
깨지고 또 빛나고 너울거리는 은빛 물결.
그 아름다움에 빠져 버려 멍하니 물살만 바라본다. 잠시 자판기에서 커피 한잔 뽑아들고 벤취에 앉았다.
따뜻한 커피향이 입속에 머문다. 떨어지는 작은 이파리 하나, 얼굴을 스친다. 그리고 벤취위에 머문다.
공원의 벤취, 낙엽, 커피 그리고 그 옆에 세워둔 자전거.
한폭의 가을 풍경화 모습이다.
강옆 작은 습지엔 갈대가 무성하게 자랐다.
그리고 그 사이 때이른 철새무리가 찾아들었다.
청둥오리 무리인가 보다. 연신 물속에 머리를 박고 먹이 사냥에 열중이다.
다시 자전거는 고개길을 오른다. 신탄진 방면에서 문의 방면으로 오르는 길.
가파른 경사길에다가 굴곡진 도로다.
한참을 힘겹게 오르니 다시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길.
그건 아마도 우리 인생의 삶이나 마찬가지일지 모른다. 어렵고 힘든 시간이 지나면 행복된 쉼의 시간이 오는것처럼…
문의면 청남대가는 길. 대청호 주변 하얀 은빛 억새가 장관을 이루었다.
바람에 자신의 씨앗을 태워 멀리멀리 보내고픈 억새가 삐쭉 대궁을 올렸다.
내리막 아스팔트 길.
두바퀴 구름은 탄력을 받는다. 상쾌하다.
몸도 가볍다. 쉬엄쉬엄 달려온 자전거 여행, 가을을 만끽하고 나니 시장기가 돈다.
길옆, 부부농장이라는 식당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포도도 팔고 주말 농장도 있고 식당도 한다.
길옆 주차장도 넓다.
참나무 숯 돼지고기도, 단호박 속에서 잘 익혀진 찰밥도 구미를 당긴다.
휴일 하루
대청호 길따라 두바퀴에 몸을 싣고 달려본 가을길.
서두름이 없어 좋고 복잡하지 않고 교통체증이 없어 좋은길.
은빛 억새. 푸른물.
길가에 뒹구는 떨어진 낙엽.
배추, 무 뽑는 아낙네들 모습.
계절따라 찾아온 철새들.
까치밥의 여유로움이 남아있는 시골 농가 뒷편 감나무 두 그루.
그런 여유로움과 따스한 가을 햇볕이 나를 흡족하게 만들었다.
자전거는 온길을 다시 달린다.
돌아가기 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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