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창한 휴일날 정오.
아직 추울날이 많이 남아 있긴 하지만 날씨는 완연한 초봄이다. 지구 온난화 현상으로 바뀌어가는 이상 난동.
이러다가 겨울이란 단어가 계절속에서 사라지는 날이 오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엊그제 내린 단비로 주변 초목들은 벌써 봄 준비에 들어간 모양이다.
자세히 초목들을 살펴보면 꽃망울 주변 모습이 겨울날의 모습과 다르다. 줄기에 연한 연두색 빛이 벌써 자리 잡았다.
그리고 잎을 틔울 새순은 껍질모습이 부드러워졌다. 주변온도에 따라 움직이는 초목들. 따뜻해질 날들을 얼마나 기다리며 긴 인고의 날을 보냈을까? 365일.
변함없는 세월의 흐름은 벌써 봄날을 맞이하고 있나보다. 요즈음 들어 유독 세월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나이 듦의 징조일까?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월요일인가 싶으면 곧 금요일이 되고 토·일요일 쉬다보면 1주일이 가고 그렇게 몇 주 지나면 한달이 가고 그저 그렇다 싶으면 계절이 바뀌어 버린다.
혹독한 추위와 폭설이 없어서일까? 금년 겨울은 겨울다운 맛을 느끼기도 전에 봄으로 넘어가는 기분이다. 추위와 폭설이 없는게 속마음으론 정말 다행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상황에 날씨라도 추웠으면 에너지 소비량이 급증했을 것이고 폭설이라도 자주 내렸으면 오가는 교통상황에 얼마나 신경 쓰였을까 하는 걱정이 눈 내리는 낭만보다 더 앞서기 때문이다.
그게 솔직한 심정이다. 꿈·낭만·추억보다 현실이 더 중요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이 탓도 한 몫 하리라.
오늘은 어느지인과 함께 미술관을 가기로 했다. 나는 미술엔 관심이 없다. 관심이 없다기보다 잘 모르기 때문이리라. 그저 초·중·고등학교 시절 미술시간에 배운 그림 그리기가 전부다. 취미라도 있었으면 관심을 갖고 공부라도 했을지 모르지만 그저 그렇게 접은지 오래, 요즈음은 서예에 조금 관심이 가긴 하지만 선뜩 시작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 마음 준비가 덜 된 탓이라 생각된다.
글쎄 조금 여유가 생기면 서예는 시작해 보려한다. 검은 먹과 하얀 종이의 만남. 힘차게 써내려가는 붓글씨에 힘이 실려 보이는 것은 그래도 관심이 가기 때문인가보다.
오늘 가는 미술관은 공주에서 논산방면으로 가는 국도변에 위치한 「L미술관」 「C」대학교수로 재직중인 화가의 사설 개인 미술관이다.
그곳에서 기획전시회가 있다는 지인의 요청으로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곳이라 같이 가기로 한것이다. <br /> 나는 그곳을 얼마전 한번 방문한적이 있었다.
미술자체보다 주변 풍경이 더 아름답게 각인된 미술관이었다. 한번 가본길이라 머뭇거림없이 달린다. 미술관 가는 길. 햇살이 따사롭다. 달리는 차에서 차창을 여니 춥다기보다는 차라리 시원하다.
휴일이지만 동학사 입구 박정자 삼거리를 지나니 도로가 한가롭다. 여유로운 길. 차속에서 듣는 라디오 프로도 경쾌함을 더해준다.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마티 터널을 얼마 남겨 두지 않고 우회전 하면 도로변 식당이 나온다. 「ㄱ」돌솥밥 집이다. 황토벽에 깔끔하게 인테리어 된 아담한 식당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개별 방도 많다.
음식 맛도 맛이지만 종업원들의 웃음진 써빙이 더 맘에 드는 집이다. 식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간대였지만 사람들이 붐비는 이유가 있었다.
요즈음은 자동차문화 발달로 식당위치는 그렇게 문제되지 않는것같다. 맛 그리고 멋, 분위기, 깔끔함에 헌신적인 종업원들의 써비스가 추가된다면 그곳은 성공한 식당 이리라. 맛있게 돌솥비빔밥을 먹고 커피한잔으로 입가심 하고 차는 공주로 향한다.
마티 터널을 지나 금강대교에 이른다. 시원한 강바람이 우리를 먼저 환영한다. 유유히 흐르는 물길에 햇볕이 내려 앉아 은빛처럼 반짝인다.
그 빛에 눈이 부실정도다. 공주방향으로 달리다.논산방면 4차선 국도에 진입해 10여분 달리면 「L」미술관 이정표가 나온다. 충남 공주시 계룡면 기산리.
한가한 농촌 마을이다. 농가가 띄엄띄엄 자리하고 마을입구에 다다르면 큰 느티나무 정자를 먼저 만난다.
휴일이지만 미술관은 한적했다. 사람이 없다. 월간 미술시대 기획으로 「16개의 방(房)·선(線)과 색(色)의 합주」란 타이틀로 특별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16인의 작가가 각각 독립부스에서 작품을 보여주는 것으로 연합전의 성격도 띠고 있다고 한다. 2000년대 들어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들의 장르도 동·서양화로 다르지만 작업 역시 구상에서 미니멀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나는 미술품보다 주변풍경에 더 관심이 갔다. 아담한 농촌마을. 한적한 농가 한켠에 멋지게 자리한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면 우선 수많은 조각품이 방문객을 맞는다.
그리고 전시동 A·B·본관·실습실·방갈로·산책로·넓은 연못·아름다운 조경과 잘 다듬어진 잔디. 예쁘게 하얀 색으로 지어진 집들. 연못위에 운동회날 만국기처럼 형형색색으로 설치된 펄럭이는 깃발.
곧 꽃망울을 터트릴것 같은 꽃나무들. 꽃피는 봄날엔 소풍을 와도 좋을만한 장소다. 개관한지 10년이나 되었단다. 모 방송국에서 드라마 촬영지로 선정되었다는 표지도 붙어 있었다.
미술품 감상을 마치고 산책로를 걷는다. 솔직한 고백이지만 특히 서양화 비구상 부문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지 작가의 의도를 내 짧은 식견으론 알 수 가 없었다.
작가의 심오한 뜻을 어찌 무식한 사람이 알 수 있으랴. 무식의 극치겠지만 한 장의 낙서판 같은 느낌도 들었다. 색·선 그리고 보이지 않는 힘이 표현 됐겠지만 잘 알수 없는게 서양화다.
따뜻한 휴일날 오후. 남향 미술관엔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고 있었다. 누런 잔듸속에 푸르름도 잉태했다. 목련 꽃망울 털복숭이 모습도 봄날을 기다리고 있는가 보다.
두꺼운 껍질을 벗어 던지며 준비중인가 보다. 찻집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방문객이 적어 열지 않았나 보다.
방문객을 상대로 설문지를 받고 있었다. 정성스럽게 느낌을 작성해주고 미술관을 떠난다.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가끔 이벤트 전시회가 있을 때 또 와보고 싶은 곳이다. 꼭 미술품 감상보다 그것을 핑계로 바람도 쏘이고 드라이브겸 다녀 올 만한 곳이기 때문이다.
대전서 공주 가는 길은 4차선 국도로 뻥 뚫렸다. 교통이 그리 막히지도 않는다. 주변에 계룡산·동학사·갑사·신원사 가는 길도 만난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산림박물관도 주변에서 그리 멀지 않다.
조금 더 달리면 구절초 축제로 유명한 영평사(永平寺)도 가 볼수있다. 그리고 봄날 초록 축제로 유명한 마곡사도 당일 다녀올수 있는 거리여서 좋다.
여행길에 맛집도 빼 놓을수 없는 즐거움이다. 공주가는 길목엔 칼국수집이 많고 또 「ㄱ」칼국수 집은 유명세에 힘입어 넓은 주차장에 식사 시간대 관계없이 차들로 빼곡하다.
사람들이 늘 붐비고 자리를 기다린다. 수육 그리고 들깨 수제비, 칼국수 맛이 일품이다. 기다렸다가 먹는 맛이 더욱 입맛을 돋게 만드는지도 모른다.
저 멀리서 훈풍이 불어온다. 봄날의 바람이다. 미술관 풍경도 보고 봄바람, 강바람도 느꼈다. 즐거운 드라이브 여행이었다.
한번 다녀오시면 어떨까? 풍경 좋은 미술관에서 그림감상도 하시고 땅속에서 움틀거리는 봄의 미동을 직접 발아래 진동으로 느껴 보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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