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사는 집 마당에는 네 평짜리 작은 밭이 있다.
요즘 들어 지난 늦봄에 심었던 상추, 쑥갓, 피망, 고추, 가지, 그리고
방울토마토 등이 쑥쑥 자라고 있다.
무공해 야채들은 여름 식단을 풍성하게 꾸며준다.
푸릇한 쑥갓과 상추를 따서 양념된장을 바른 다음 보리밥 한 숟가락을 넣고 삼키면 입
안 가득 싱싱한 생명력이 전해진다.
이 조그만 밭에다 올해는 나름대로 작은 태평농법(?)을 실험하고 있다.
채소 옆에서 자라는 풀들을 뽑지 않고 그냥 내버려두었다.
거센 풀들 때문에 행여 자라지 못하지나 않을까하는 염려와는 달리 채소는 여타 풀들과 조화를 이룬다.
그 자체로 하나로 어우러져 여름날 작은 자연 정원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 대전 보문산 자락 입구의 한 식당을 들른 적이
있었다.
황토벽돌로 만든 전통가옥 식당은 비빔밥, 두부, 그리고 도토리묵을 파는 곳이다.
마당 한쪽에 자라는 풀들을 뽑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주인에게 이유를 물었다.
우리들녘에서 자라는 풀들을 일부러 채취해서 심어놓았다고 했다.
잡초라는 편견을 버리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니 거기엔 소담한 조화가 있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푸성귀나 여러 풀이나 모두 풀은 풀이
아니던가!
작열하는 햇빛 아래 채소와 풀들은 옹기종기 서로 이웃하며 쑥쑥 크고 있다.
가끔 집에서 기르는 슈나우저 강아지도 키 큰 풀잎사이를
지나다가 빨갛게 익은 방울토마토를 날름 따먹기도 한다.
비오는 날이면 어디선가 맹꽁이도 들어와 이슬 맺힌 풀잎 사이에서 잠시 묵상에 잠기다가 어디론가 사라지곤 한다.
여기엔 동물과
식물들이 어우러진 하나의 작은 우주다.
이른 아침, 동녘이 밝아올 때 쯤 동네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뻐꾸기의 노랫소리는 고요한 아침의 신비를 더 짙게 덧칠하고 있다.
하루 일을 마치고 밭에 물을 주는 것도 좋은 재미거리다.
시원한 물줄기를 먹으며 여름나절 뙤약볕 밑에서 못내 지쳤던 식물들은 기쁨의
탄성을 지른다.
지난 번 하루 일을 마치고 집에 있는데 밖에서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옆집에 사는 아저씨였다.
비닐봉지에 담은 갓 따온 상추냄새에서 풋풋한 흙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농사로 생계를 이으시는 이웃집 아저씨는 가끔 밭에서 딴 깻잎,
호박, 상추를 필자에게 건네주곤 하신다.
흙과 더불어 살아가는 그분 소매에서 푸근한 농심(農心)이 솔솔 배어나온다.
도연명(陶淵明)은 독산해경(讀山海經)이란 시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초여름에 초목이 자라 / 집 둘레의 수목이 무성하니 / 뭇새들은 의탁할 숲이 있음을 기뻐하고 / 나도 또한 나의 초옥을 사랑하노라. / 이미 밭 갈고 또한 씨 뿌려 / 가끔씩 나의 책을 읽는다.’(초반부) 이 시는 초여름, 농사가 잠깐 한가한 어떤 날, 보슬비 내리는 조용한 농촌에서 위로를 받는 정회(情懷)를 묘사한 것이다.
만물이 생생하여 흐뭇한 풍경 속에서, 시인은 손수 가꾼 채소로 반찬을 삼아 먹으면서 잠시의 휴식을 즐기고 있는 것이다.
거기서 세상을 차분히 관조하여 마음을 가다듬었던 것이다.
중국 북송시대의 철학자 정이천(程伊川, 1033~1107) 선생은 정자
앞에서 뙤약볕을 맞으며 무성히 자라고 있는 풀들을 지켜보고 있었다고 한다.
그 누가 이유를 묻자 조물주께서 어떻게 풀포기 사이에서 활동하시는가를 지켜보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한다.
하늘을 향해 죽죽 뻗어나가는 풀잎처럼 우리네 삶도 시원시원하게 살아가야겠다.
꾸밈없는 모습 그대로 살면서도 다른 존재들과 조화를
이루는 식물들은 보는 것 자체로 평화다.
짙은 생명력을 내뿜으며 자신의 생을 노래하는 풀잎처럼 우리네 인생 또한 그러해야 한다고 전하며 말이다.
대학(大學)에 보면 ‘정심성의(正心誠意)’란 말이 있다.
‘마음을 바르게 하고 뜻을 참되게 하라’는 의미이다.
특히 이 말은 단체나 회사 같은 데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이들이 새김직한 말씀이다.
영어로는 이와 비슷한 말로
‘인테그러티(Integrity)'란 말이 있다.
요즘엔 이 영어단어를 ‘진정성(眞正性)’으로 번역하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인테그러티’란 단어를 ‘진정성’으로만 해석하면 자칫 그 의미가 축소될 수도 있을 만큼 폭넓은 뜻을 지니고 있다.
이것은 내면적으로 일관된 원칙의 틀에 기초를 둔 행동양식이다.
지도자는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다음 행동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이렇듯 동일한 핵심 가치체계에 기반을 두고 지도자는 믿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 ‘인테그러티’는 마음속으로 일의 결과를 계획하면서
자신의 행동에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는 개념이다.
만약 지도자가 이런 ‘인테그러티’의 부재로 인하여 회원들이 행위의 다음단계를 예측할 수 없다면 그들은 혼란에 빠지고 지도자를 불신하게 된다고 한다.
반대로 지도자가 이렇듯 일관된 철학 속에서 행동할 때 구성원들은 지도자를 깊이 신뢰한다는 것이다.
조직의 성패는 바로 이런 지도자의 건강한 인테그러티에 달려 있다.
그러면서 지도자가 회원들 모두의 복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 조직은 늘 건강하게 발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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