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암정사, 그 석굴의 정교함이란
지리산 칠선계곡 입구 벽송사 서암정사.
물과 바람과 나무그늘.
신선한 숲이 끝없이 펼쳐진 지리산 자락을 따라 석굴 법당으로 이름난 서암정사를 찾아간다.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도 이곳 칠선계곡에서는 그 위력을 접어야 한다.
넓은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내려서 굳은 몸을 푼다. 그리고 앞에 펼쳐지는 칠선계곡의 아름다움.
숲도 나무도 계곡도 절묘하지만 곳곳에 자리한 펜션의 아름다움도 빼어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가 된다.
그리고 저 먼 지리산 산중턱까지 펜션이 자리 잡았다.
풍경이 좋은 곳엔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람들 모이는 곳에는 어쩔 수 없는 위락시설이 들어선다.
그것을 환경이라는 타이틀로 탓해야 하는지 편의시설로 즐겨 이용해야 하는지 스스로도 잘 모르겠다.
절제와 통제가 절묘히 어우러져 유지되어야 하는데……
자연도 살고 사람들도 즐기고.
조금 가파른 길을 오르니 우측으로는 벽송사, 좌측으로는 서암정사라고 이정표에 화살표가 그려졌다.
벽송사는 뒤로하고 석굴로 유명한 서암정사로 오른다.
입구부터 다르다.
일주문 대신 양측에 마하대법왕(摩河大法王), 조어삼천계(調御三千界)라 쓰여진 돌기둥이 서 있고 그 길을 따라 오르니 바위에 새겨진 사천왕상이 나의 눈을 제압한다.
천연바위에 정교한 모습으로 조각된 4개의 5m가 넘는 대형 사천왕상.
일반사찰의 사천왕문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 길을 따라 무지개처럼 생긴 대방광문으로 들어서면 조금 오래된듯한 한옥같은 미타전이 보인다.
그 옆엔 수령이 꽤나 된 듯한 후박나무가 있고 그 아래 노스님이 한가로이 책을 읽고 계셨다.
앞산 풍광이 너무 좋다.
남쪽을 바라보는 정남향.
앞쪽에 펼쳐진 지리산 자락의 정기가 모여드는 곳이란다.
벽송사(壁松寺)의 부속암자였던 서암정사는 원응(元應)스님이 1960년대초 6·25때 지리산에서 무고히 죽어간 수많은 원혼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이고득락(離告得樂)을 기원하며 10여년동안 동굴에 부처님과 불보살 등의 밑그림을 그리면 홍덕희라는 석공이 정으로 한뜸한뜸 자수를 하듯 조각하였다고 하는 석굴법당이다.
안양문(安養門)이라 새겨진 쪽의 문을 열고 극락전 석굴로 들어간다.
석굴이라기보다 자연동굴처럼 보인다.
큰 바위를 정으로 쪼아 만든 바위속 작은 암자다.
아니 절이다.
우선 그 규모에 놀라고 정교함에 입이 닫혀지지 않는다.
아! 하는 감탄사뿐…
정말 놀랍다.
나는 그 아름답고 웅장하고 정교한 바위속 작은 사찰을 보고 더 이상 무어라고 적어야 할지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 표현 능력의 한계인가 보다.
마치 조각가가 나무토막을 깍아 만들듯이 화강암을 자유자재로 쪼아 불상을 조각하고 용과 연꽃을 그리고 기둥을 만들고 천정을 조각했다.
석굴전체가 하나의 대웅전이자 예술품이고 조각품, 아니 궁전이다.
10년이란 세월이 적은 기간은 아니지만 어떤 정성이 있었기에 석공(石公)은 저토록 정교한 모습으로 각인할 수 있었을까?
사람만의 노력과 힘만으로는 불가해 보였다.
시간개념을 잘 알 수 없는 석굴 안이기 때문일까?
예외적으로 불전 앞에 큰 시계가 붙어있다.
입·출구를 막으면 저녁인지, 낮인지 알 수가 없을 것 같다.
습기조절 때문인지 환풍이 자동으로 콘트롤 되고 있었다.
한 덩이의 큰 화강암에 사람의 힘으로 굴을 만들고 그 암석위에 빼곡이 조각한 모습.
천정도, 벽도, 바닥도 오로지 같은 돌이다.
한참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왔다.
사람의 한계는 어디까지 가능할까 하는 의문점이 계속 머리에 남았다.
그리고 그 석굴 아래 아름다운 작은 연못이 있다.
물을 뿜기도 하고 산과 바위 나무와 풀들이 어우러져 자연스런 천상의 정원을 만들었다.
계단을 내려가 자연굴로 형성된 찻집에 들렸다.
큰 가마솥에 장작불을 피워 약초탕을 다리고 있었다.
그 장작불 연기는 암벽 벽면을 타고 올라 낮은 굴뚝으로 피어 올랐는데 산속에서 흐트러진 나무 연기 냄새는 싫지 않은 또 다른 느낌을 주었다.
통나무를 자른 의자에 앉아 스님들이 즐겨 마신다는 약초탕을 한잔씩 음미한다.
값은 한잔에 2,000원이다.
또 다른 분위기의 찻집.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고 그 물을 이용해 작은 물레방아를 돌리고 그 아래 물에는 어린 물고기들이 노닌다.
언덕에는 자연숲이 들어앉고 각종 꽃들이 화분에 심겨져 싱싱하기 그지없다.
토굴 같은 찻집. 하지만 이곳은 그래도 천정의 Sum Light라는 판재를 통해 간접 햇살이 들어오고 있는 곳.
겨울철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 곁에 앉아 불 쪼이며 마시는 차 맛은 또 다른 운치를 줄것 같다.
찻집을 나오니 요사채가 이어진다.
각방마다 스님들이 명패가 걸렸다.
방문은 굳게 닫혀있고 앞에 대발이 내려졌다.
유독스럽게도 하얀 고무신 한 컬레가 가지런히 놓여있는 것을 보니 스님이 정진중이신가 보다.
혹시라도 실례가 될까봐 조심조심 걷는다.
석굴을 뒤로하고 위로 오르니 그곳에도 절벽의 바위에 각종 불상을 새겨 놓았다.
이곳의 바위는 돌덩이가 아닌 모두가 조각 예술품이다.
아니 몇 백년을 내려갈 불상이자, 보물이다.
아! 이곳에 얼마나 많은 석공들의 애절함이 함께했을지 이해가 간다.
그들은 단지 일당을 받기 위해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다.
단순한 돈벌이 수단의 마음으로 저런 살아계신듯한 부처님이 탄생할 수 없다.
혼이 들어간 조각품이다.
무언가 사명감으로, 아니면 부처님의 보살핌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탄생할 수 없는 작품들이었다.
아마도 세속을 등지고 불심 속에 한조각 한조각 새긴 피와 땀의 결정체였으리라.
서암정사를 둘러보면서 정말 많은 것을 느꼈다.
물론 옛날에 비해 석공들의 일을 돕는 각종 공구나 기구들이 발전했음은 물론 이지만 저토록 많은 일들을 어떻게 해냈을까?
저렇게 만들자고 생각했던 원응스님의 원대한 꿈은 어디서 받은 영감이었을까?
의문뿐이다. 정말 잘왔다고 생각했다.
일반사찰은 어디서든 만날 수 있고 갈 수 있지만 서암정사 같은 곳은 만나기 어렵다.
그리 멀지 않은 길.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도 한번 찾아보시길 권하고 싶다.
정교함에, 웅장함에 그런 기획력에 놀랄 수밖에 없음을 공감하실 것이다.
내려오는 길.
너무 많이 보고, 느끼고, 마음에 담아오는 것이 많아 행복감이 솟아난다.
발걸음도 가볍고 콧노래가 절로난다.
만족이란 이런것일까?
어느 사찰 방문때보다 깊게 느낀 그 무엇이 있어 좋았다.
한참을 내려오다가 전답가운데 평평하게 자리한 실상사(實相寺)에 들린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사찰이다.
실상사는 그저 평범한 절이다.
산자락이 아닌 평지에 앉은 그런 사찰이다.
이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 정기가 일본으로 가버린다는 풍수지리에 따라 세운 절이란다.
너무 넓어서일까?
조금은 어수선한 느낌이 든다.
대웅전과 일부 전각은 대대적인 보수중이었다.
대웅전 위에 또 다른 큰 가설 건물을 짓고 그 안에서 보수중이다.
비계목이 설치되었지만 그 사이로 참배객을 위한 통로는 만들어져 있었다.
이곳 실상사는 주물 불상이 유명하단다.
육중한 주조로 부어 만든 불상이다.
템플스테이가 진행중인가 보다.
승복을 입은 사찰 체험자들 모습이 보인다.
실상사에는 환경을 생각해서 지었다는 재래식 해우소가 있었다.
냄새는 좀 나지만 배설물은 다시 퇴비로 활용하는 구조로 만들어져 있었다.
자연으로 모든 것을 돌려주자는 주지스님의 의지가 담긴 글이 해우소 옆에 적혀 있다.
절을 일으켰다는 옛 스님의 부도를 참관하고 실상사를 나왔다.
사찰은 어느 곳을 가도 정겹다.
종교를 떠나 그 심오한 경지를 느낄 수도 있고 바람소리 정겨운 조용한 그런 분위기가 좋다.
산속에 있어 더욱 정겨운 곳.
단청의 아름다움도, 풍경소리 고즈넉함도 불경소리 반가움도 내 머리에, 마음에 남았다.
짧은 일정의 지리산 자락 소풍 길.
산사가 있고 아름다운 숲과 산이 있고 계곡물이 넘쳐나고 먹거리가 있어 좋은 길.
또 한 번 가고픈 곳이다.
영원한 아름다움.
지리산 여름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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