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그것은 단지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과 사람사이의 대화, 즉 정(情)이 그립기 때문이다.
이젠 배고픔은 어느 정도의 노동만으로도 해결 할 수 있다.
단지 ‘본인이 건강하다면’이란 전제가 따르긴 하지만…
언제부턴가 삶이 풍요로워진 것처럼 보였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듯하고 토요일이 휴무가 되면서부터 일보다는 여가 활용에 더 많은 꿈들이 영글어 가는것 같다.
해외 출국자가 년 1,000만명을 넘는단다.
참 좋은 현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그늘도 있다.
소득 양극화가 더 심화되고 가난이 대물림 되는듯한 느낌을 받곤한다.
이런 느낌은 나만이 느끼는 것은 아니리라.
물론 어느 사회나 다 같이 풍요롭게, 여유롭게 사는 것은 아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기 마련이지만 겉으로 느끼는 풍요보다 속으로 멍드는 빈곤의 그늘이 생각보다 크다는 것이다.
휴가철을 맞아 연일 언론에서는 인천공항의 해외 여행객에 대한 출국자들의 모습이 비추어진다.
방학과 휴가 시즌이 겹쳐 출국심사대에는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원화 강세와 맞물려 더 붐비는 상황이란다.
해외 여행자체를 부정하는 의미는 아니다. 여행은 참 좋은 경험이다.
특히 해외여행은 우물안을 벗어나는 좋은 경험이자 스스로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어학(특히 영어)의 필요성을 체험할 수 있어 학생들에게는 남다른 각오로 공부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심어줄 수 있어 더욱 좋다.
세계가 하나된 시장, 이제는 외국어를 공부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모든 부문에서 해당 전공과목 실력보다는 어학이 중요시된지 오래다.
직장에서도 어학중심으로 부서가 배치되는게 현실이다.
그저 관광성 외유가 아닌 영어에 대한 절박감을 몸소 체험하고 돌아오는 학생들의 해외여행이 되었으면 한다.
이 좋은 여름날.
우리 같은 중년들은 붐비는 해외여행보다 조용한 산자락을 찾아 불어오는 바람에 마음을 씻고 소쩍새 우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산속마을에서 시원하게 하루밤을 보내기로 하고 금산의 어느 깊은 산속 찻집으로 모였다.
아저씨 한분이 10여년전 이땅을 장만해 20t콘테이너 하나를 마련하고 이곳에서 7년을 홀로 나무를 심고 가꾸면서 4년전 언덕위의 하얀집이라 불리는 멋진 2층 집을 지었다.
금산군에서 수여하는 아름다운 건축물로 지정되어 상을 받은 집이기도 하다.
아름답기 그지 없다.
노루재 언덕위 산자락 남향으로 지어진 집.
대지가 2,000여평이나 되고 각종 꽃나무, 과일나무가 풍성하게 자라는 곳이다.
다람쥐가 놀러오고 봄이면 꽃이 피고 5월에 뒤편 아카시아 꽃 향기가 마당을 덮는다.
여름이면 머루 다래가 익어가고 고추와 고구마, 옥수수가 태양빛을 받아 영글어 가는 곳.
가을이면 입구에 노란 단추국화와 구절초가 예쁜 꽃 내음을 흘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 속, 멋진 별장으로 탈바꿈 하는 곳이다.
너무나 깔끔하게 정돈된 아름다운 찻집이다.
금년이 두 번째 모임이다.
매년 여름밤 이렇게 좋은 곳에 몇몇 지인들이 모여 삼겹살 파티를 하기로 한 것이다.
별 준비도 없이 그저 어느 분은 삼겹살을, 어느 분은 야채와 과일을, 소주를 그저 들고 와서 밤하늘 보면서 이렇게 넓은 마당에서 펼치는 여름밤 파티다.
시골 밤은 도심의 밤과 확연히 다르다.
정말 불을 켜지 않으면 깜깜함 그 자체다.
달빛도 없다. 아직 보름이 멀었나 보다.
산도 길도 모두가 한가지 흑색으로 변했다.
단지 저아래 보이는 연못물만이 그나마 하얗게 보여 그곳이 물인지를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옛 선비들이 글에서 야백수(夜白水)라 표현했나 보다.
바람이 분다. 정말 시원한 밤바람이다.
나무를 스치는 바람에 푸른 잎새들이 서걱인다.
동구 밖에서 개짓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소쩍새도 울어댄다.
짝을 찾는 애절함의 절규인가?
아니면 ‘솥이 적다’고 울어대는 배고픔의 표현인가?
글쎄 우리네는 알 수 없지만 산자락 시골마을의 아름다운 밤소리임에 틀림없다.
그러면서 산골마을에 적막이 찾아든다.
마을버스도 끊긴 시간. 도로에는 차량 불빛도 보이지 않는다. 낮에 힘든 노동으로 일하신 농부들도 잠자리에 드실시간이 지났나 보다.
밤이 깊어가는 시간.
찻집 밖 마루에서는 삼겹살이 구워지고 소주잔이 오간다. 한잔 두잔 세월을 안주로, 나이 듦의 한탄으로, 아니 삶의 진솔한 얘기로, 아이들 장래 문제 걱정으로 이야기는 끊이질 않고 계속된다.
바쁘게 돌고 돈 소주잔의 움직임에 모두들 취기가 찾아들었나 보다.
정치현실 얘기엔 목소리도 높아진다. 취중에 진심이란 뜻도 이래서 만들어졌나 보다.
노래도 시작된다. 노래방 모니터에 익숙해진 세대라 가사도 엉망이고 중간에 끊기기도 하고 그러면서 대화도 줄어들면서 모두들 졸음이 찾아든다.
아까부터 울어대던 소쩍새 울음소리에 조금전부터는 찻집 뒤편 산에선 ‘괙-괙-’하는 탁음이 들리면서 장단을 맞추는듯 한다.
고라니 울음소리란다. 산속이 울창해지면서 부쩍 늘어난 고라니들.
그 울음소리를 직접 듣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말씀에 의하면 새벽에는 집주위까지 내려온단다.
밤이 깊어지자 산속엔 기온도 많이 떨어지나 보다. 으스스 추워진다.
초저녁과 그 느낌이 다르다.
산속집인데도 모기가 많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왁자지껄하던 삼겹살 소주파티는 하나 둘 자리를 떠나면서 조용해지고 산속마을 밤은 깊어만 간다.
반딧불이 날고, 소쩍새 울고 고라니 찾는 깜깜한 밤의 풍경.
하늘엔 별이 떳다.
은하계가 하얗게 자리잡고 반짝이는 별빛이 순수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사람이 죽으면 별이 된다던 어릴적 읽은 어느 동화책 얘기.
아니 알퐁스도데의 소설 ‘별’
그럼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 별은 어느것일까?
먼훗날 내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니 나도 별이 되어 저렇게 아름답게 밤하늘에서 비추고 있을까?
소주병은 쌓여가고 바람은 산위로 오르고 하얗게 변한 숯은 이제 제 역할을 다한 듯 온기를 잃었다.
불판에 남겨진 삼겹살 몇 점. 마당으로 던져 버린다.
이른 아침 부지런한 새들이 먹고 고마워하기를 기대하면서…
그렇게 여름밤 삼겹살 파티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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