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쉬는 날이지만 서울엘 가야 합니다.
학교친구 아들이 오후3시에 관악구 서울대 호암 교수회관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대전에서 차를 가지고 간다는 것은 돈 낭비, 시간 낭비이기에 기차표를 예매했습니다.
사실 길도 잘 모르고…
시간도 여유있고 해서 영등포에서 내려 지하철 2호선을 갈아타야겠기에 무궁화로 예매했습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고급스러웠는지 무궁화열차가 무척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KTX에 입맛이 들어버린 것이지요.
느림의 미학을 느끼기보다 지루함이 느껴졌습니다.
KTX생긴게 엊그제인데…
사람들이 편리함에 이렇게 쉽게 중독되어버리는가 봅니다.
기차값도 반값인데 말이에요.
편리함에 익숙해지려는 자신을 채찍해 봅니다.
겨울은 을씨년스럽습니다.
말라버린 풀. 누렇게 변해버린 억새대궁. 아무것도 없는 빈 들. 앙상한 나뭇가지…
삶이 멈추어버린 대지. 아직 얼지 않은 개천가 냇물만이 그저 소리없이 흐름니다.
사람들도 보이질 않습니다. 모두들 집안에 있는가 기차길옆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무궁화호 열차는 만석에다가 입석 손님도 빈틈없이 꽉차버렸습니다. 모두들 무슨일로 서울엔 가시는지…나처럼 예식참석 손님이 많은것 같습니다. 옷차림이 깔끔한것을 보니…
좀 낭비가 심하지요. 시간도 그렇고 이동 비용도 그렇고…하지만 풍습과 습관을 하루아침에 바꿀수가 없으니 어쩔수 없지요.
그러다 보니 이렇게 계속될 수 밖에 없나 봅니다.
하는수 없죠. 나도 따라가야지…
지하철 타고 마을버스타고 겨우 식장에 도착했습니다. 반가운 친구들도 만나고…
우연히 만난 한 친구는 헤어진지 30년이 넘었나 봅니다. 학교때 만나고 처음 만났으니…
그래도 그당시 모습이 얼굴에 그대로 남아있어 금방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글쎄 멀지도 않은 고향 충주에서 사업을 하고 있답니다.
자주 가는 충주이기에 소주한잔 하기로 약속을 하고 헤어졌습니다.
얼마나 반갑던지…늘 마음한구석 궁금했는데…
다시 역순으로 되돌아옵니다.
가는 길의 반대방향이지요. 마을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영등포역까지 왔습니다. 시간이 조금 있어 예매한 표를 빠른 시간대로 바꾸려고 줄을 서 보니 모두가 매진되고 입석뿐이랍니다.
그래서 그냥 기다린후 타기로 했답니다.
영등포 역사. 우선 넓고 깨끗합니다.
백화점도 있고 책방도 있고 커피점도 있고…
사람들 표정도 가지각색입니다.
노숙자인듯한 사람들도 많았답니다.
사람들에게 소주값 좀 적선하라고 무언의 강요를 합니다.
자기들끼리 티격태격하기도 합니다.
조금 거센 행동이 일자 어디선가 금방 경찰이 나타났습니다. 순회근무자인 듯 여경도 함께 왔습니다. 잠시 장내는 침묵이 흐르고 금새 평온을 찾았답니다.
만남과 헤어짐의 장소. 기차역 대합실.
누군가를 기다리는 부푼 꿈을 안고 들어오는 사람들을 일일이 확인하는 사람, 어디론가 미지의 곳으로 떠나는 첫 여행지에 설레는 마음의 여행자.
열차 안내 방송이 흐르고 전광판엔 출발과 도착을 알리는 글자가 반짝이는 곳.
그게 대합실 풍경이다.
이곳 영등포역은 지하철과 경부, 호남, 장항선으로 출발하는 모든 열차가 정차하는 곳이다.
단지하나 KTX 고속열차만이 정차없이 통과할 뿐이다.
따라서 늘 붐빈다. 내리는 사람, 떠나는 사람,
모두들 바쁘게 보인다. 게다가 마중 나온 사람들까지 합세되어 늘 대합실 의자는 자리가 없다.
특히 오늘 같은 토요일 오후는 더욱 붐비는듯하다.
보따리를 들고, 또 머리에 이고 힘겨워 보이는 할머니, 그를 발견한 듯 달려가는 젊은 여인. 아마도 딸인듯 싶다.
반가움에 두 사람은 말을 잊고 젊은 여인은 짐부터 받아든다.
아마도 무겁게 들고 오신 짐 보따리는 시골에서 준비하신 먹거리 일게다. 비닐봉지에 주저리 주저리 담았다.
서울에도 얼마든지 있으련만 고향 맛이 배어나는 농산물, 어머니가 직접 농사 지으신 물건들이리라.
돈으로 환산하기보다 귀여운 딸에게 주고픈 마음에 어머니 얼굴엔 미소가 그득하다.
“그냥 오시지 무얼 무겁게 들고 오셨냐구”투정 아닌 투정을 하는 딸, 참 보기 좋은 모습이다. 대합실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 아닐까?
자식은 출가를 해도 변하지 않는 모정.
어쩔 수 없는 모성애일까?
저 할머니 나이 정도 되시면 되레 보호를 받아야 할텐데…
부모들의 자식사랑. 그건 한없는 내리사랑이다.
그런 아름다운 부녀의 만남이 있는가 하면 또 다른 아쉬운 이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헤어짐이 못내 아쉬운 모양을 보니 아마도 젊은 연인인 듯 쉽다.
잡은 손을 놓지 않는다.
어디를, 어떻게, 어느 기간 동안 떨어져 있어야 하는지 몰라도 해외로 떠나는 국제공항 출국장도 아니건만 저토록 아쉬움이 남을까? 헤어짐이 애틋할까?
아니지 그건 내 나름대로 판단하는 우리시대 기준 인지도 모른다. 요즈음 젊은 세대는 우리 때와는 다르다는 생각을 나는 왜 잊었을까?
이곳 영등포역은 출발자의 오탑승을 방지하고자 앞 기차가 출발한 후 개찰구를 오픈한다.
개찰구는 열리고 줄서있던 사람들이 우르르…개찰구로 향한다. 젊은 연인 한 쌍은 진한 포옹을 한다.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주위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는 모습이다.
되레 그 모습을 바라보는 자신이 부끄럽게 느껴진다.
우리세대 때도 저렇게 용감한 연인이 있었을까?
아니다. 그때는 없었다. 못했다.
나이든 중년의 쓸데없는 넋두리가 스스로 내 귓전을 울린다.
개찰구를 빠져 나가면서도 손을 흔들고 또 조금 가다가 다시 뒤돌아보면서 손을 흔든다. 또 다른 아름다운 모습이다.
핸드폰도 있고 영상전송도 되는 시대에 그토록 아쉬워하는 것은 그만큼 애틋한 사랑 때문일까?
기차역 대합실.
많은 사람들이 나름대로의 사연을 안고 오간다.
희망과 꿈이 부푼 사람도 있고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
그곳에선 세상 살아가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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