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둔산은 충남 금산군과 전북 완주군 경계에 있는 아름다운 산이다.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기암절벽과 풍광이 수려해서 전국 각지에서 많은 등산객과 관광객이 즐겨 찾는 중부권 명소가 되었다.
언젠가부터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쉽게 오를 수 있음은 물론 산 위 출렁이는 구름다리와 바위를 오르는 철제계단은 가을날 단풍시즌엔 미(美)의 극치를 이룬다. 기암절벽, 아름다운 단풍, 높은 산세, 맑은 바람, 바위틈에서 자란 소나무까지 한 폭의 그림으로 펼쳐진다.
대둔산하면 태고사(太古寺)만 널리 알려져 있지 안심사(安心寺)라는 절은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관광지 뒤편에 있기 때문이다.
태고사가 관광지라면 안심사는 뒤편의 후원과 같은 곳이다. 그래서 오늘은 대둔산에 숨어있는 절, 안심사(安心寺)를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지만 오르는 길목에서 만나는 절집 풍경 감상하는 것을 더욱 좋아한다. 큰 절도 좋고 작은 암자도 좋다. 불교신자는 아니지만 산사에 들어서면 왠지 모르게 편안함을 느낀다.
일주문에서 시작해서 천왕문, 해탈문을 거쳐 대웅전에 이르는 길.
그 사이사이 공간에서 숲과 나무, 개울가 흐르는 물소리, 새소리, 바람소리, 꽃나무들을 만나며 느끼는 감정은 나에게 너무 편안함을 선사한다. 대웅전 주변의 산신각, 칠성각, 요사채등을 살펴보는 재미도 늘 새롭다.
스님들의 수도공간이라 출입을 삼가달라는 안내판이 붙여진 강원이나 요사채를 담 너머로 고개를 빼고 몰래 바라보는 호기심 또한 발동한다.
금지한다는 안내판이 있으면 더 보고 싶어지는 것은 왜일까?
대전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 안심사(安心寺).
늘 마음속에 머물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가는 길이어서 더욱 새롭다.
절 입구에 이르니 마을 이름도 안심마을이다.
“얼마나 마음이 편했기에 안심마을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마을 입구에서 절에 오르는 길은 포장은 되었지만 좁고 굴곡져서 차가 교행시에는 조심을 해야 했다.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논 보다는 밭이 많은 대둔산 서쪽 끝자락이다. 하지만 마을이름 때문일까? 편안하고 포근한 느낌이 드는 것은 우연일까?
좌청룡, 우백호의 커다란 산세 아래 포근히 자리잡은 마을이다. 그래서 벌써 농촌지역이지만 예쁘고 아름답게 그림처럼 지어진 전원주택이 많이 자리잡았다.
꽃 잔디도 유난히 예쁘게 피었다.
돈 좀 있는 도시 사람들이 노후를 보내기 위해 별장처럼 지은 것 같다. 농가 살림집이 아니다.
생각컨대 아마도 그 옛날 안심사가 번창할 때는 저 마을 입구부터 절 땅이 아니었나 싶다.
안심사 유래에 따르면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무려 30여 채의 전각과 13개의 암자가 있었던 웅장한 사찰 이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모두 불타버려 지금은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부처님 진신사리와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 부도와 안심사의 역사를 말해주는 안심사 비문을 통해 흔적을 겨우 더듬을 수 있을 뿐이란다.
옛 영광은 어디로 숨어버린 걸까?
일주문을 지나 절집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저 작고 평범한 절이란 생각이 먼저 앞선다.
다행인 것은 마당은 아직 포장하지 않고 자갈이 깔린 곳이었다. 오염되지 않은 환경이어서 더욱 친밀감이 갔다.
돌계단을 따라 오른다. 그렇게 호화로운 사찰이 아니다. 비로 지나 부처님을 모신 적광전이 대표적이다. 적광전에서 앞산을 바라보니 마치 형상이 누워있는 사람의 얼굴 모습과 흡사하다.
이마와 코, 입이 분명하게 보인다. 누워있는 와불이다.
앞산을 한참 바라보니 마음이 편안해진다. 서있는 것보다 앉아 있는 것이 편안하고, 앉아있는 것보다 누워있는 것이 편안한 법.
그래서 안심사(安心寺)라 이름 지은 것은 아닐까?
사리부도전으로 오른다.
가건물로 지어진 적멸보궁에서 바라보면 유리창을 통해 사리부도전이 보인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후 그 육신을 다비하여 나온 진주처럼 생긴 전신사리와 치아사리를 모셨다고 한다.
하지만 돌계단이 일부 헝클어지고 뒤편 산자락이 무너졌다. 관리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돌 틈에서 피어난 파란 제비꽃이 아름답다.
사리부도전과 적광전 사이에 대웅전을 짓기 위한 터가 있다. 가건물을 철거한 자리가 정리되지 못하고 흉물스럽게 남았다.
설령 신축이 곧 예정되어 있다고 해도 깨끗이 정리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을…
아쉬움이 남는다. 고요한 산사의 아름다움에 티가 남는다.
이곳도 비구승의 도량이란다.
곳곳에 할미꽃, 금낭화, 제비꽃등 야생화가 예쁘게 심겨졌다. 아직 산 위라 그런가 조금 이른 편, 꽃이 피기 까지는 시간이 걸릴 듯싶다.
뒤편에 산신각이 자리 잡았다.
산신각이란 글자체가 특이하고 재미있다.
적광전 우측 뒤편 산자락에 새로 지었나보다.
산속에 예쁘게 자리 잡았지만 오르는 계단이 영 눈에 거슬린다. 자연석 돌계단으로 만들었다면 한 폭의 산수화로 보일텐데 화강암을 매끄럽게 다듬어서 계단을 만들었다.
자연과 순화되는 모습이 아니다.
요사채와 종무소로 쓰이는 육화당(六和當).
주지스님께서 차 한 잔 나누고 가시라고 부르신다.
폐만 끼치는 것 같아 머뭇거리다 들렀다.
녹차를 우려 주시기보다 우리에게 선택권을 주신다.
사찰에서 마시는 원두커피, 그 맛이 더욱 새롭다.
동학사에서 계시다가 2년 전 이곳으로 부임하셨단다.
대웅전 불사를 앞두고 바쁘신 와중에도 우리들과 대화를 오랫동안 나누셨다.
잊어버렸던 범종을 간절한 기도로 다시 찾으셨단다.
아마도 그대로 안심사에 있었다면 전란 중에 소실되고 말았을 범종. 하지만 범종도 단지 철만이 아닌 실체가 있어 그 화를 피했을 것이란 말씀이셨다. 보이지 않는 생명력이 있다는 것 아닐까? 스스로 생각해 본다.
몇 년 전 강원도 대형 산불로 낙산사 범종이 전부 녹아 버린 것을 우리는 T.V를 통해 생생히 보지 않았던가?
주지스님의 좋은 말씀을 듣고 일어선다.
스님 두 분이 하얀 차를 깨끗이 세차하고 계셨다.
주지 스님의 출타가 예정되어 있는 것 같았다.
마음 속 평화를 느끼며 서둘러 안심사를 떠난다.
옛 시절, 안심사의 번창했던 모습을 머리에 그리며 차는 오른 길을 다시 내려온다.
봄꽃 향기가 차 속으로 파고든다.
벚꽃잎이 낙화하여 꽃비를 내린다.
봄날 찾아와야 할 절.
그곳은 대둔산 안심사인가 보다.
주변의 배나무꽃, 벚꽃, 개나리, 진달래, 꽃잔디, 두릅나무가 우리를 반겨준다. 동행하신 K사장님 지인이 손수 만들어 오신 꿩고기 만두를 먹으며 봄날의 맑은 바람과 햇살을 찬미한다.
꽃이 있어 향기롭고 맑은 계절.
봄날은 그렇게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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