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직장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하여 명함이란 걸 받던 날 나는 한 조직의 구성원으로 인정받음에 대한 설레임과 기쁨.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책임감을 동 시에 느끼는 그런 기분이였다.
1976년 11월, 그 다음해 2月 졸업을 앞두고 입사했으니 벌써 햇수로는 28년전 일이다.
그 당시만 해도 명함이 보편화되지 못했었고 핸드폰은 물론 FAX도 없었고 E-mail도 없었다. 전화사정도 여의치 않아 회사로 연락할 때도 대표 전화로 걸어 여자 교환원을 통해 사무실로 연결되던 시절 이였다. 지금의 통신수단과는 비교 할 수 없는 그런시절이였다.
“명함” 학교 재학시절 가끔 선배들이 학교를 방문하면 한 장씩 나누어주던 작은 사각의 카드 한 장, 회사이름과 로고, 그리고 이름, 부서명 대표전화및 회사 주소 가 적힌 작은 종이 한 장 이였지만 나도 저런 명함을 언제 가질 수 있을까하는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통상 명함은 100매 정도를 한 케이스로 하여 당시 총무 부서에서 일괄 만들어 주 었다.
지금은 모두 양면인쇄를 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인쇄시 가격차이가 있다고 해서 수출 부분및 직책 보유자정도에게만 영문이 들어간 양면 인쇄를 해 주었다.
그 당시를 되돌아본다. 신입사원은 누구나 3개월 수습교육을 받았다. 당시 반도 유스호스텔에서 받았던 일주일정도의 숙박코스와 부서소개, 공정별 교육및 현장 실습을 통해 제품의 제조 공정및 관리 포인트를 배우는 기회였다. 명함을 받고 지갑 속에 몇 장 간직하고 있었지만 딱히 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업무상 거래선과의 만남이나 상담은 아직 미숙하여 기회도 주어지지 않았다. 그 당시는 물론 결혼전 이였다.
당시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서울에서의 하숙생활은 그저 외로웠다. 가끔 만나서 차 마시고 일요일날 학교 친구들과 어울려 도봉산, 북한산 수락산등 서울및 경춘선근교 산을 오르는 등산모임에 참석하는 한 여성에게 나의 첫 명함을 건넸다.
그 당시는 명함지갑도 없이 그저 지갑에서 꺼내 주었다. 이름도 알고 근무처도 알 고있어 새로울것도 없는 명함이였지만 그저 주고 싶었다.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전달해진 명함은 그렇게 시작 되였고 그 여성이 지금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삶을 살아가는 인생의 반려자가 되였다.
그렇게 해서 대리, 과장, 차장, 부장, 팀장, 임원등 직급이 바뀔 때마다 또는 부서 가 바뀔때마다 명함은 새롭게 만들어졌고 이력이라도 되는 듯 하나씩 지금도 명함 철 제일 뒷편을 메우고 있다.
명함.
그 안에는 간절히 원했던 만남, 그저 삶을 살아가면서 통과의례처럼 주고 받은것 그리고 망각 속으로 잊혀져 가는 삶의 연륜이 쌓여있다.
때론 오래 되였어도 잊혀지지 않은 명함도 있고 한달을 못가 기억도 가물거리는 형식상 주고받은 명함도 있다. 새로운 시작과 만남의 코드로도 가능하지만 단 1회 성으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경우도 있는게 사실이다.
상업성이 강한 명함일수록 대개가 화려하다.
어떤 명함은 칼라사진이 들어간것도 있고 이름보다 전화번호가 더 큰 글씨로 인쇄 된 것들도 있다. 대게 큰 회사일수록 단조롭고 깔끔한것 같다. 그리고 지방 자치 제가 실시되면서 관련 공무원들의 명함에는 그 지역 특산물 홍보를 위한 내용이 들어있어 신선미를 준다. 이름과 동시에 그 지역 특산물 홍보도 겸하기 때문이다.
작은 카드 한장의 크기이지만 디자인이 예쁘고 새로운 형태의 명함도 많다.
언젠가 일본 출장시 저녁 식사후 작은 스낵 바에 들린적이 있다. 일본인들의 명함 교환은 상례화 되다시피하여 손님이 오면 우선 마담이 자기 명함을 돌린다. 다시 오지 않을 외국인이라도 그렇다.
그 마담은 명함에 주소.전화번호등 기본적인것은 인쇄를 하고 자기 이름은 꼭 파 란잉크의 만년필로 써서 주었다.
디자인도 독특했지만 그렇게 써서 준다는 것은 실제 어렵고 불편한 일이지만 늘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름 석자 뿐이지만 만년필 잉크가 아름답게 남아있다.
가끔 볼 때마다 정성이 생각나고 그때 모습이 기억된다.
그저 인쇄된 것을 받았다면 아마도 바로 버렸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이후에 그곳 을 가본적은 없지만 나는 아직도 그 명함을 보관하고있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에 정성이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명함에 대한 에피소드도 많다.
직장을 오래 다니던 분이 명예퇴직을 하게 되였는데 습관이 되여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주머니에서 명함지갑을 찾다가 “아~ 참 이제 퇴직했지”하고 스스로 놀라면서 줄 명함이 없어 주춤 거렸다는 얘기, 정부 고위직임명시 언론에 흘러나오는 사 람들의 이름을 넣어 모두 인쇄하여 가지고 있다가 발표가 되면 즉시 들고가서 명함을 건넨다는 얘기도 들었다.
임명받은 자도 연락 받은지 몇 시간도 안되여 명함을 가지고 온 해당 부서 사람을 보고 이렇게 빨리 만들었나하고 깜짝 놀랐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명함은 또 하나 나의 존재다. 때로는 익명을 요구하며 자신의 존재가 밝혀지는 것 을 꺼리는 요즈음 이름 석자 선명히 박힌 명함이야말로 어쩌면 더욱 귀중하게 간 직해야 할것 같다.
자신의 명함이 귀중하게 간직되기를 원하듯 나도 남들의 명함을 곱게 관리하고 때 론 전화를 하든지, 메일로 소식이라도 보내든지 해야 하지 않을까?
아니면 1년에 한번 연하장이라도 보내야겠다. 그러면 이렇게 이름을 기억하고 있음에 기뻐해 할 것이다.
만남이란 무엇일까? 익숙하게 명함을 교환하고 업무 얘기를 진지하게 나누었어도 내면의 진실이 존재하지 않으면 그저 업무상 만나고 얘기하는 절차상의 만남으로 끝날지도 모른다. 진실한 만남을 지속시키기 위해서는 서로간의 무던한 노력과 신 뢰를 바탕으로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저 단순하게 쓰레기통으로 버리지 말고 무게도 부피도 크게 부담을 주지 않는 명함 하나 재정리해서 깨끗이 보관해야 겠다. 나른한 오후, 찾아오는 졸음이라도 쫓는 심정으로 서랍속 명함을 하나, 둘 꺼내보자. 그리고 구분하여 명함철에 끼워 넣자. 내가 소중하듯이 남도 소중하니까.
명함도 삶을 살아가는데 하나의 재산이 되리라.
어차피 세상은 혼자 살아 갈 수 없는 구조로 되여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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