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서둘러야 했다.
오늘은 어버이날, 부모님이 계신 충주에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아버님이 병원에 입원해 계시고 어머님은 보호자로 같이 계시지만 두 분 다 환자나 다름없으시다.
연세가 많으신 탓이다. 아버님이 금년에 90세, 어머님이 83세이시다.
아버님은 지난해 10월초 척추질환으로 두 번의 대수술을 받으셨다. 많으신 연세에도 불구하고 4시간이 넘는 수술 시간을 잘 이겨내셨다.
마취에서 깨어나시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경고에 가슴 졸였지만 수술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그렇게 어렵게 두 차례의 대수술을 이겨 내셨지만 아직 아버님은 완쾌되지 못하시고 병상에 누워 계신다.
일반적인 활동은 가능하시지만 거동이 불편하시고 힘들어 하신다.
완쾌는 어렵다는 주치의의 서전예고도 있었지만 단행된 수술, 역시 많은 도움은 되었지만 완쾌는 불가능하기에 답답할 뿐이다.
환자 본인의 마음이야 더 안타깝고 고통스럽겠지만 바라보고 있는 자식들에게도 큰 고통으로 남아있는 게 사실이다.
사람은 누구나 나이 들면 생로병사의 과정을 밟는다.
그게 진실이고 사실이다. 영생할 수는 없다. 불로초를 구하던 진시황제도 그 범주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진실 앞에서 자신은 예외인양 알고 살아가는 것 같다.
5월8일 어버이날.
금년은 주말도 휴일도 아닌 주중에 들었다.
몸도 불편하신데 자식들이 모두 외지에 있으니 누가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드릴 수 없기에 더욱 서러움을 느끼실 것 같아 오후에 별도의 일정이 있어 일찍 대전을 떠나 충주로 가는 길이다.
병상에 올려놓을 꽃바구니 하나와 카네이션 두 송이를 가는 길에 꽃집에서 샀다.
미리 많이 준비해 놓고 있었다. 생화여서 좋았다.
카네이션, 한없는 부모님 은혜, 어디 그 꽃송이 하나로 갚을 수 있으랴만 가슴에 달아드릴 수 있다는 기쁨에 가는 길이 가볍다.
같은 병실의 환자들이 모두 카네이션을 받았는데 우리 부모님만 받지 못하신다면 얼마나 서러우실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그 꽃 한 송이. 큰 의미는 없지만 왠지 모르게 금년만이라도 꼭 달아드리고 싶었다. 왜일까?
어쩌면 내년 어버이날을 기약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섬뜩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사람일은 알 수가 없다.
밤새 안녕이란 말도 있지 않은가?
5월 초순. 따사하게 내리는 햇살이 곱다. 그 빛 받아 연초록 푸르름이 더욱 아름답게 빛나는 계절. 그래서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 했나 보다.
차창을 내린다. 싱그러운 초록 내음이 차안을 채웠다 비웠다 반복한다.
모든 것은 마음에 달렸다.
먼 거리도 기분좋게 달리면 금세 도착하고 가슴마저 울렁거린다. 늘 찾아오던 병실 703호 아침 정리 및 청소가 한창이시다. 음료수를 한 병씩 병실의 환자들에게 드리면서 쾌유하시기를 기원해 드린다. 척추전문병동이라 모두들 연세가 지긋하신 할아버지 분들이다.
환자복에 달아드리는 카네이션 한 송이.
그 꽃만큼이나 얼굴이 활짝 펴는 하루라도 되셨으면 좋겠다. 꼭 오래사시기보다 통증없는 나날이 되셨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기도해 본다. 아버님도 많이 여위셨다. 척추 신경요인으로 다리 관절이 저려서 운동을 거의 못하신단다.
우선 보행에 지장을 받으시니 그럴 수밖에 없으시리라. 자식된 도리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무력감에 부끄러울 뿐이다.
아버님은 90평생을 사시면서 이번일 말고는 수술이나 입원을 하신 적이 없었다. 그만큼 건강 하셨고 부지런하신 성격에 몸 관리도 잘하셨는데…
이젠 야윈 모습에다 자신감을 상실하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자식들을 위해 빨리 죽어야 하는데 그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씀이시다.
삶과 죽음.
그 경계선을 생각해 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사이에서 고통스럽고 서러운 감정을 느끼게 될까?
말로는 “죽어야지” 하지만 모두들 생에 대한 애착은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었다. 생명의 끈을 놓치고 싶지 않은 그 심정을 왜 누구는 모를까?
어버이날!
효(孝)를 다시금 생각해 본다. 아니 아직 이 나이에도 잘 모르는지 모른다. 부모님이 자식 걱정하는 것에 비교할 수 없으리라. 이제 나도 딸을 시집보내고 나니 그 심정을 조금은 깨닫게 되는 것 같다. 더 해주고 싶고 더 보태주고 싶은 심정뿐이었다. 힘들까봐 뭐 도와줄 것은 없는지, 잘 살고 있는지 늘 궁금증뿐이다. 잘 살아야 하는데, 잘 살아야 하는데 하는 괜한 조바심뿐이다.
말로 표현은 못해도 하늘을 쳐다보며 무언의 기도를 할 뿐이다. 결혼식장에서 양가 부모님께 드리는 인사를 받을 때 눈가에 맺히는 눈물을 절제하려고 딸과의 눈길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내 눈은 예식장 천정을 향하고 있었다.
왜일까? 키워온 정성 때문일까? 자기 삶을 찾아가는 영광스럽고 가장 축복받아야 하는 날 눈가에 맺히는 눈물의 의미는 무얼까?
그게 사랑일 게다. 사랑은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내 부모님 심정도 똑같으시리라.
카네이션 한 송이 들고 새벽에 대전에서 달려온 아들의 고마움보다 혹시 모를 걱정이 더 앞섰을 것이다.
힘들게 전화나 하지 뭐 직접 이렇게 달려왔냐고 걱정이셨다.
하지만 내 마음은 하루 종일 편했다. 기분 좋았다.
부모님 가슴에 달아드린 카네이션 한 송이.
아마도 부모님은 저녁때까지 달고 계셨으리라.
그저 인사차 방문한 자식에게 어버이날을 기억해줌에 고마워하시는 아버님 말씀. 자신의 고통보다 시집간 손녀를 걱정하는 할아버지의 손녀사랑.
부모님의 은혜는 바다보다 깊다.
하늘보다 높다.
이 세상 무엇과 그 사랑을 비교할 수 있을까?
그래도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
이렇게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릴 부모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지금 병마의 고통에서 시달리고 계시지만 벌써 저 세상으로 운명을 달리하신 벗들의 부모님에 비하면 나는 큰 행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싶어도 달지 못하는 친구들의 슬픔은 아마도 내가 지금 겪는 고통보다 몇 배는 크리라 생각된다.
다시 대전을 향해 오는 길.
따사롭다 못해 더워진 날씨도 그저 즐겁다.
숙제를 마친 아이들 심정이 이럴까?
어머님, 아버님, 사랑합니다. 늘 건강하셔요.
고통에서 해방되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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