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토요일. 충주를 다녀왔다.
어머님께서 편찮으셔서 “K”대 충주병원에 입원, 일주일동안 검사를 받으셨는데 담당주치의 교수가 검사 결과를 보호자에게 알려주신다고 토요일 10시까지 병실로 오라는 간병사의 연락을 금요일 밤 8시쯤 받았다.
우선 큰 병은 아니고 탈진현상과 노환이 겹쳐 힘들어 하신다는 말씀에 안심이 되었다.
토요일 9시에 사전 업무차 미팅약속이 있었지만 양해를 구하고 시간에 맞추어 아침 7시 30분에 대전을 떠났다. 공교롭게도 비가 내려 고속도로는 시야도 흐리고 차들마저 주춤거려 일부구간은 지체되는 곳도 있었다.
조심, 조심 차를 달려 9시 40분에 병원주차장에 도착했다. 우선 병실로 가서 어머님을 뵈오니 일주일전보다 훨씬 얼굴이 좋아 보이셨다.
하지만 아직도 침대엔 금식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첫날엔 C.T촬영, 그 다음날 위내시경 검사, 그리고 대장검사가 필요해서 금식기간이 길었다.
게다가 변비증상으로 인한 숙변때문에 대장검사가 하루 미루어지기도 했다. 노환이 있으신데다 검사를 위한 몸고생이 심하셨다는 간병사님의 말씀.
10시가 가까워 오기에 간호사실에 가서 담당주치의께서 10시까지 오라고 해서 왔는데 교수님 방을 알려 달라고 하니 회진중이시니까 병실에서 기다리란다.
한 시간을 기다려도 오시지 않았고 연락도 없었다.
다시 한 번 간호사실에 확인하니 좀 더 기다리란다.
그럼 잠시 주차장에 좀 다녀온다고 했더니 그 사이 오실지도 모르니 그저 병실에 계시라는 짜증스런 소리만 내 귓가를 울린다.
1시간 45분 후 그러니까 정확히 11시 45분, 수련의 5~6명이 따라오며 담당교수님이 들어 오셨다. 시간이 늦어 미안하다는 짤막한 말씀에 어머니 병세를 2~3분 설명해 주셨다.
퇴원하셔서 식사만 잘하시면 별문제 없다는 말씀이셨다. 어머님 병세에 안도는 했지만 시간 약속도 저버리고, 연락도 못하게 하는 간호사들,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는 이유는 무얼까?
시간을 맞추기 위해 대전서 빗길을 달려온 자신, 허무하기 그지없었다. 괘씸한 마음에 당장 어머님 모시고 퇴원을 하려 했지만 토요일이라 안되니 월요일에 퇴원하란다.
그래서 월요일 11시쯤에 퇴원하실 수 있도록 사전조치 좀 해달라고 했더니 그날 와보란다.
시간 약속은 어렵단다. 아주 태연스런 표정의 말들이다.
그래도 “K”종합대학교 충주병원인데…
그토록 안일한 생각일까. 건물구조나 의료장비.
즉 하드웨어는 손색이 없건만 중요한 소프트웨어, 즉 서비스 정신은 사라지고 없었다.
아니 애당초 잉태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 병원 방문이 이번에 처음이기에 잘 모르지만 여느 대형대학병원에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의술은 어떨지 내가 평가할 수는 없지만…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고 글쎄이지 않을까?
나는 어머님이 검진 받으시는 일주일 동안 여러 차례 간호사실로 연락해서 의사선생님이나 인턴의사도 좋으니 통화할 수 있게 연결시켜 달라고 부탁도 드리고 전화번호도 알려드렸지만 통화는 물론 불가했고 늦은 시간이라도 연락 주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환자의 보호자인 내가 가서 뵈었어야 함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전이라는 지역적 거리도 있고 아직 검사가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매번 찾아다니는 것도 솔직히 어려워, 하루 6만원의 비용을 지불하면서 간병사도 모셔야 했는데…
서울의 “S”병원, 대전의 “C”대학병원…등은 요즘 참으로 많이 바뀌어졌다.
옛날 우리가 어릴 적 생각하던 그런 권위의식의 병원이 아니다. 친절하고 깨끗하고 시간개념 철저한 의료원이 되었다.
종업원들에게 환자의 마음까지도 어루만지는 그런 서비스 정신이 철저하게 배어있다. 이것은 물론 병원장의 기본방침도 중요하겠지만 교육의 결과로 본다.
병원장부터 솔선수범하는 풍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사람 개개인이 아닌 조직적인 풍토가 이루어져야 하고 그것을 따라가지 못하는 의사나 간호원 아니 모든 구성원들은 과감히 도태되어야 한다.
그래도 개선되지 않는 병원은 과감히 문을 닫아야 한다.
망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원에 조경수가 멋지고 꽃이 아름답게 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이용자인 환자가 불편하고 보호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곳이 못되는데…
지금까지 우리나라 대형병원들이 환자들을 볼모로 군림했는지도 모른다. 환자들이 밀려오기 때문에 아쉬움을 느끼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젠 그런 시대는 지났다.
환자들이 병원을 선택할 수도 있고 아니면 외국 의료기관을 찾는 사람들도 있다.
병원이란 검진의 목적도 있지만 아직까지는 대부분의 환자들이 절박한 심정으로 찾는다.
그런 절박함을 인식하여 바쁘고 귀찮고 힘들진 모르지만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다시 한 번 가져주었으면 한다.
그저 나하나 2시간의 약속지연이 문제가 아니라 나보다 더한 기다림과 고통을 감수한 환자나 보호자가 없다고 누가 단정할 수 있겠는가?
지금은 섬김의 시대다.
낮출수록 대접받는 것이 현실이다.
옛날처럼 군림하거나, 자기 맘대로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들은 정의사회에서 밀려나게 되어있다. 환자의 절박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하고 의술에 임해주었으면 한다.
의사도 사람이 있어야 필요한 사람들이다.
묵묵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힘들게 일하는 의사들이 물론 대다수다. 쉴새없이 수술하고…진료하는 외과 의사들, 오죽하면 요즈음 젊은이들이 외과의사를 기피한다고 할까?
상대적으로 편한 피부과나 돈이 되는 성형외과, 응급환자 없는 치과를 선호한다는 말이 거짓이 아니리라.
바른 봉사정신은 나를 낮추는데서부터 출발한다.
지키지 못할 약속은 하지 않아야 한다.
중도에 문제가 생기면 그때라도 연락을 주어 다른 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진심 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날 담당의사는 자기가 한 약속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간호사들의 표정에서 느낀 내 솔직한 심정은 그 의사에게 누구도 연락하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연락을 두려워하는 표정이었다.
보이지 않는 권위의식에 눌림을 당하는건지, 아니면 카리스마 같은 그 무엇이 있는지…
이제 모든 부문에서 자기를 좀 낮추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보자.
그게 손해가 아니고 진정한 나를 높여 대접받는 것이다.
씁쓸한 마음으로 병원을 나선다. 주차료 5000원.
시간 지체에 따른 주차료는 한 푼의 차감 없이 징수하고 있었다.
원인제공자의 과실은 자기는 모른단다.
ㅅ, ㅂ, ㅅ, ㅂ, 욕이 입에서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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