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군 문의면 문의초교 앞.
대청댐 자락의 시골마을이다.
한때 권위의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던 청남대를 방문하려면 이곳에서 투어 버스(시내버스)로 갈아타야 하는 정류장이 있는 곳이다.
오늘은 이곳 다문화공간(茶文化空間) “산하”를 찾았다.
月江(월강) 권 선생님을 4개월 만에 두 번째 뵙는 날이다.
주변 보리밥 식당에서 거친 점심식사를 하고 뿌리는 빗줄기를 피해 걸어 오른다.
점심식사 시간이라 그런지 초등학교 운동장엔 아이들 떠드는 소리가 요란하다.
좀처럼 듣기 힘든 아름다운 고성방가(?)다.
까르르…하하, 호호, 웃기도 하고 내달음질치기도 한다. 뛰고, 넘어지고, 잡아당기고…
내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는데…기억조차 없는 막연한 그리움을 만들어 본다.
방문객을 위한 안내. 작은 간판 “산하”
출입구에 ‘open’이란 팻말이 걸려졌다.
작은 꽃밭이 우선 나를 반긴다.
아니 채소가 같이 자라는 텃밭, 전원의 집앞 공간이다.
씨를 움틔워 키운 차나무부터 차광막까지 만들어 주신 꽃무릇도, 빨갛게 알알이 영근 방울토마토, 상추…
화분에서 키워낸 머루까지…
푸른 꿈들이 알알이 익어가고 있었다.
작은 꽃밭에서 주인의 정성과 사랑을 받은 식물들이 “좋아라” 꿈의 왈츠를 덩실덩실 추는 듯하다.
그들은 서로 경쟁하지 않는다.
내가 먼저 커야 살아남는다는 경쟁의식이 없어도 된다. 서로가 서로를 안고 사랑하고 살아 가도록 적절히 배치해주셨기 때문이다.
햇빛을 두고 싸울 필요도, 땅속의 수분을 서로 당기지 않아도 되도록 충분히 공급해 주신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벨을 누른다.
벨소리도 경쾌하고 고상하다. 척박하지 않다.
그 소리흐름에도 여유가 있어 좋다.
반가운 모습으로 맞이해 주신다.
더욱 건강해지신 모습이 너무 보기에 좋았다.
2층으로 오른다. 2층엔 차실이 있다.
그 이름도 거룩한 “맑향”이다.
법정스님이 운영하시는 “맑고 향기롭게”라는 모임의 이름에서 따온 이름이란다.
창문이 사방으로 달린 2층 다실.
우선 바람이 시원하다.
대청댐 위를 지나온 바람이 산자락 숲의 향기를 머금은 채 이곳을 감싸돈다.
대나무 자리로 만든 방석, 시원함을 더한다.
차 관련서적, 주역관련 서적, 수집집, 사진관련 서적들이 권 선생님의 마음을 읽기에 부족함이 없다.
낮은 찻상, 넓은 공간, 섬세한 다기들.
찻물이 서서히 끓어오른다. 물에 넣은 마른 녹차가 당시의 모습대로 잎을 펼친다.
단순히 차만 마시는게 아니다.
정(情)을 나누고 삶을 얘기하는 곳이다.
전화가 울린다. 사모님이 교회에 갔다 오셨단다.
앞 화단에서 금방 따왔다고 방울토마토와 과일을 들고 오셨다.
듣고 가는 고귀한 말씀도 송구스러울 지경인데 향기로운 찻잔의 고마움도, 게다가 과일까지 몸둘 바를 모르겠다.
부러운 삶, 아름다운 노후의 삶이다.
사진찍기를 취미로 하시고 언제나 문을 열어 놓고 방문객을 맞는다.
차 한잔 우려내서 대접하고 좋은 덕담까지 보태 주신다. 돈을 받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좋아 사람을 만나시는 분이다.
노트북에 저장된 사진이 대한민국 온산을 들어다 놓았다. 주로 산을 찍으신다.
안다녀오신 곳이 없을 정도라신다.
산을 찍기 위해 그분은 주변 산을 더 많이 오른다.
방향을 잡기 위함이다. 산도 가야하고 주변 능선도 올라야 하니 우리들보다 2배는 더 다니셔야 하는 것이다.
사모님께서 또 옥수수를 삶아 오셨다.
정말 맛있는 대학 찰옥수수이다.
차 마시랴, 과일 먹으랴, 고귀한 말씀 들어야 하는데 배 채우기 바쁜 자신이 부끄럽다. 너무 송구스럽다.
바람이 한 바퀴 방안을 돌고 나간다.
어젯밤 내린 비 때문인지 바람이 더욱 청량하게 느껴진다.
짙은 녹음이, 내리는 햇살에 더욱 생기를 찾았나 보다.
뒷 창문으로 보이는 초등교 운동장.
운동장을 경계로 지어진 집은 아담하고 고요하다.
2층 바닥이 운동장 면과 높이가 비슷하다.
울타리 없이 그저 개방된 학교, 깨끗하고 아담하다.
알록달록 벽 그림도, 놀이터도, 재미있게 배치되었다.
차도 마시고, 고귀한 말씀도 듣고, 과일도 옥수수도 얻어먹었다.
너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다음 기회에 또 방문하기로 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정년퇴임 후 공기 좋고 숲 향기 물씬 나는 그리고 아이들 정겨운 소리가 늘 들리는 학교 앞 예쁜 집에서 화단도 가꾸고 텃밭도 운영하면서 산에도 오르시고 사진도 찍고 책도 읽어가면서 여유로운 삶을 보내고 계시는 것이 너무 좋아보였다.
아름다운 삶이었다.
화려한 삶의 겉모습보다 내면의 가치있는 삶이 더욱 아름답게만 보이시는 분.
그런 분을 만나게 된 것도 내겐 큰 행운이었다.
조금 느리게, 현실에 안주하면서 삶의 여유를 보여주시는 분이다.
자식들 다 결혼시키고 단지 두 분만이 대청호수 자락 시골마을에서 맑은 공기와 숲의 향기, 밤에는 내리는 별빛을 되찾으신 선생님 내외분, 늘 건강하게 사시기를 두손모아 기도드려 본다.
아마도 이보다 아름답고 정겨운 삶은 없으리라.
인터넷을 검색하시면서 최신 신간은 모두 사셨나보다.
출판된 지 며칠 안되는 책에선 물씬 잉크냄새가 풍겨오는 듯하다.
동행했던 지인에게 들은 말씀이 지금도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사모님께서 하신 말씀이 평생 벌어다 준 돈만 썼는데 이젠 내가 봉사할 때라고 하셨단다. 부부는 일심동체,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한다. 건강하시기를 빌어드린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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