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평(楊平)가는 길. 쉼 없이 비가 내린다.
물 찾아 가는 길에 빗물이 앞장서서 내 가는 길에 비를 뿌리며 나를 따르라는 듯 가까워지면 질수록 비의 강도는 세어진다.
맑은 물과 푸른 숲, 깨끗한 공기가 어우러져 자연과 인간이 살아 숨쉬는 수도권 최고의 전원, 생태, 휴양의 고장 양평. 그 아름다움과 옛사랑의 기억을 더듬으며 양평을 찾아 나섰다.
수도권과 1시간여 거리.
일부지역엔 이미 전철이 들어와 있고 지금은 양평까지 전철을 연결시키기 위해 공사가 한창이다. 금년 말이면 개통된단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두물머리라는 이름은 두 물줄기가 만나는 곳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양수리의 우리말 이름이란다.
이렇게 물과 산, 계곡이 어우러진 풍광 좋은 곳엔 구석구석 아름다운 전원주택과 펜션이 빼곡히 자리잡았다. 모두가 수도권 사람들의 전원주택.
별장이자 휴양지. 쉼터라는 미명아래 산골짜기마다 그 옛날 시골스러운 모습은 점점 퇴색되어 가고 있었다.
카페, 민박, 연수원, 음식점, 콘도, 모텔까지… 산 속 곳곳에 개발의 삽질은 닿지 않는 곳이 없다.
도로도 뻥뻥 뚫어 놓았다.
도로가 개설되고 사람들이 몰리다보니 부동산 투기도 제철을 맞았다. 곳곳에 부동산 중개업관련 사무실이 들어서고 간판에는 큼직한 글씨로 “땅”땅”이라고 써 놓았다.
순진한 시골 총각은 처음엔 사격연습장 간판인 줄 알았단다.
순진함일까, 자본주의를 비웃는 허탈감의 표현일까?
아무튼 양평은 수도권 사람들이 찾는 쉼터임에는 틀림없었다.
우선 계곡이 많고 서울로 흘러드는 북한강, 남한강 줄기 덕분에 강변엔 새로운 명소가 많이 생겨났다.
특히 여름철엔 물놀이와 연인들의 드라이브코스로 각광을 받는단다. 강변에 자리잡은 카페와 펜션은 그 아름다움이 물줄기와의 만남으로 더욱 빛을 발한다.
밤엔 그 야릇한 불빛이 물속에 또 하나의 그리움으로 뜬다고 했다.
먼 친척의 가족행사에 참여키 위해 방문한 양평.
마침 줄기차게 내리던 비도 멈추었다.
일정에 여유가 있어 정말 오랜만에 용문사를 찾아가기로 했다.
수령 1100년이 되었다는 은행나무로 더욱 유명해진 절이다.
이곳 용문사는 내가 대학시절 등산을 한번 왔던 곳이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기억은 은행나무만이 남았고 가는 길에다 절 집의 모습은 사라져 버렸다.
단지 산을 오르는 길목에 계곡이 있어 그곳에서 흐르는 땀을 식힌 기억만이 아직 남아 있을 뿐이다.
평일이라 그런지 휴가철인데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넓은 주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입구엔 농업박물관도 새로 만들어졌고 어린이 놀이터도 경쾌한 동요소리와 함께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절에 오르는 길.
정상부터 흘러내린 계곡물은 오르는 사람의 마음조차 시원하게 만든다.
엊그제 내린 장맛비로 계곡은 가득 채워진 물로 굉음을 내며 아래로 아래로 흘러내린다.
바위를 넘고 나무뿌리를 감싸며 흘러내리는 물.
손을 담그니 너무 시원하다. 계곡 요소 요소에 나들이 나온 사람들이 발을 담그며 피서를 즐긴다.
계곡 따라 오르는 길.
장성한 적송들이 아름다움을 뽐낸다.
바람이 분다. 물 위를 스쳐온 시원한 바람이 내 몸을 감싼다. 축축하다기 보다 촉촉함이 느껴진다.
이름모를 새들이 나뭇가지 위를 오가며 여름낮을 즐긴다.
겁 많은 다람쥐 한 쌍. 선하게 생긴 눈망울이 나와 마주쳤다.
멈칫하더니 숲속으로 재빠르게 도망쳐 버린다.
계곡 물소리 들으며, 다람쥐와 숨바꼭질하며 오르는 길.
산속의 신선한 향기가 내 코를 간질인다.
길 옆 큰 소나무 한그루가 계곡으로 넘어졌다.
아마도 어젯밤에 바람이 세차게 불었나 보다.
며칠 계속된 장맛비로 뿌리부분의 땅에 물이 스미면서 무거운 나무의 힘을 버티기 어려웠나 보다.
넘어지면서 주변 나무들도 가지가 꺾이고 부러졌다.
아마도 저것또한 자연의 삶이리라.
넘어지고 부러지면서 또 그들은 그 나름대로의 삶을 이어가리라. 사람들이 벌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 유지해가는 자연스런 생의 모습이기에 아름다워 보이기도 했다. 자연스러움이었다.
산 정상에서 내린 빗방울이 모이고 모이면서 산 아래로 흘러내린다. 여기 저기 작은 계곡물이 낮은 곳을 향해 흐르며 한곳으로 모여드니 계곡물은 이제 통제할 수 없을 만큼 크게 불어났다.
조용한 산사계곡에 엄청난 소리를 내며 흘러내린다.
바위를 때리고 때론 폭포를 만들기도 하며 물안개처럼 물방울을 피어내기도 한다.
그런 계곡소리를 들으며 오르기를 20여 분, 저 위에 용문사가 보인다.
우선 1100년 된 은행나무가 나를 멈추게 만든다.
낙뢰로 인한 은행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철제로 피뢰침을 만들어 세웠다.
은행나무보다 높게…
높이 41m, 흉고가11m, 수령1100년, 천연기념물 제30호,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뿌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단다.
모두들 은행나무 주변에서 기념사진 촬영에 여념이 없다.
대웅전, 지장전, 산성각, 관음전, 종각, 요사채로 구성된 용문사는 아담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왠지 모를 아늑함이 느껴지는 고색창연한 1000년 고찰이다.
여기저기 사찰을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 전통다원에 들러 차 한 잔으로 마음을 씻는다.
내려오는 길은 오를 때보다 빠르게 느껴짐은 왜일까? 기대감이 충족되어서일까?
용문사 관광지.
야생화 한 포기부터, 흐르는 물줄기, 그 위를 넘는 목제 교량까지 깨끗하고 섬세하게 만들고 관리되고 있었다. 양평군의 관심이 돋보여 좋았다.
흐르는 물소리, 넘쳐나는 수량(水量).
관광지 주변에 심겨진 아름다운 꽃, 나무들 아직도 내 머릿속에서 맴돈다. 짧은 시간이지만 정말 방문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남았다.
돌아오는 길.
산을 오르내렸더니 배꼽시계가 시장기를 알려준다.
주변 곤드레 비빕밥 집에 들렀다. 곤드레나물은 고려 엉겅퀴라고 하며 고지에서 자생하는 귀한 나물이란다.
돌솥밥 위에 올려진 곤드레나물이 입맛을 돋운다.
썩썩 비벼 먹으니 신선이 따로 없다.
반찬수도 20여 가지를 넘는다.
된장도 그 참맛이 살아났다.
거나하게 밥을 먹고 나니 옆 찻집으로 안내해 준다.
찻값이 무료란다.
닥종이 인형도 전시되고 각종 찻잔, 차들이 전시된 박물관 같은 곳이다. 곤드레 밥으로 배불리 먹고 전통차로 입가심을 하고 나니 이젠 부러울 게 없다.
그저 눕고 싶다. 양평의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물소리 자장가를 들으며…
그렇게 물 맑은 양평의 1박2일은 끝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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