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무덥다. 삶도 더위에 눌려 지쳐질 때쯤 일상을 떠나보고 싶다.
계획 없이 어느날 아침 발길 닿는 여름 계곡을 찾아 나섰다.
바다보다는 계곡이 좋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나이 듦 때문일까?
조용함을 선호하는 내 마음 때문일까?
그래도 찾아가는 길은 조금 일상의 주변에서 떨어져야 하지 않을까.
장마덕분에(?) 계곡마다 물이 넘쳐흐르긴 하지만 자주 가지 않았던 곳으로 핸들을 틀었다.
거창군 북상면 계곡
남덕유산 자락이 내려앉은 조용한 산골마을이다.
산으로 둘러싸인 전형적인 시골마을.
여름휴가철이라 계곡마다 찾아온 사람들로 길 한편은 주차장이 되었다.
구불구불 산길을 넘는다.
여름채소가 푸르름을 뽐낸다.
도라지, 더덕, 콩, 옥수수마저 옛 어린시절 자라던 고향모습이 펼쳐진다.
점터
찻집이름이다. 부부가 자연꿀도 채취하고 도자기도 만들어 굽고 머루, 다래 등 산열매로
차도 만들고 복분자, 오디, 산더덕, 인삼으로 술도 담가 판다. 자연식이다. 모두가 스스로 채취하고 발효시켰기에 그 맛 또한 비길 데가 없다.
건물도 황토흙으로 얼기설기 지었다.
매끈하고 말끔하거나 화려함은 없다. 하지만 울퉁불퉁 한 바닥이 인상적이다. 직접 만드신 도자기도 세련됨은 없지만 장맛보다 뚝배기 맛이라는 말이 정말 어울리는 집이다.
마당엔 야생화가 자란다. 계절따라 스스로 피고 진다.
지금은 백합과 나리꽃이 아름답게 피었다.
큰 고무다라에 한 쪽은 수련, 또 다른 쪽은 연잎이 불쑥 올라있었다.
홍련이 필지, 백련이 필지 넓은 연잎으론 알 수가 없었다.
자연 복분자술에 감자전으로 안주를 하고 다래차로 오후를 즐긴다. 비가 내린다.
덕유산을 넘지 못한 구름이 무거운 빗물을 쏟아내는가 보다.
잠시 후 비가 멈추기에 계곡을 찾아 오른다.
찻집 손님만이 입장할 수 있는 계곡.
그 미지의 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물소리가 요란한 것을 보니 계곡이 깊나보다.
겨우겨우 물가 계곡에 도착했다.
산위에서 바위계곡을 타고 내리는 물이 깊은 소를 만들었다.
어른들도 빠져들기에 충분한 깊이의 물이라 신발을 벗고 바지를 걷어 올리고...
아뿔사! 그 덥던 느낌은 언제 사라졌는지 발이 시리다. 발을 담갔다가 다시 바위 위에 올리고를 반복한다.
물소리 요란하고 물가 바위틈에 생명의 뿌리를 내린 초목의 잎새가 싱그럽다.
물가를 날던 잠자리도,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머리 위에도, 어깨 위에도 앉아 나래를 접고
쉰다. 사람을 자주 만나지 않은 모양이다.
어린애마냥 물속 돌도 들어보고 던져서 물방울도 튕겨본다.
한 여름 낮,
옷 입은 채로 물속에 풍덩 빠져들고 싶다.
아, 얼마나 시원할까? 목만 내놓고 있으면 그 시원함에 세상 삶의 고뇌도, 번민도, 갈등도 잊어버릴 수 있으리라. 오직 한가로운, 여유로운 쉼의 시간을 연장할 수 있으리라.
그래 참다운 휴식이리라.
쉼 없이 소리내며 흐르는 계곡의 물.
어찌 보면 경이롭기까지 하다.
산봉우리에서 시작된 빗방울 하나하나가 숲을 지나고 나뭇잎 위에서 떨어지면서 모여진 물.
바위를 넘고, 돌틈을 지나며 깨끗하게 정수된 물.
그 물이 이토록 큰 계곡을 만들었다.
이 계곡은 마르지 않는단다. 한 겨울 꽁꽁 얼긴 해도 어느 가뭄 속에서도 멈춤이 없었단다.
밤이면 이곳은 찻집주인의 부부목욕탕이 된단다.
별빛 내리고 간혹 동물들 울음소리 들리고…
아! 멋진 목욕탕이지 않은가.
산속 찻집엔 에어컨이 없다.
밤엔 아무리 더운 삼복날도 얇은 이불을 걸쳐야 한단다.
펼쳐진 산은 그들의 밭이자 논이다.
머루도, 다래도, 산딸기도 수확만 하면 된다.
농약살포도, 김매기도, 비료를 뿌릴 일도 없다.
자연이 제공하는 과실만을 소중히 따오면 된다.
토종벌꿀도 스스로 받는다.
아카시아꽃 필 때, 밤꽃 필 때, 칡꽃 필 때…
대신 욕심을 부리지 않는단다.
스스로 겨울을 지낼 수 있는 양만큼 늘 남겨둔단다.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산속의 삶이다.
마구 찾아오는 사람들을 통제하며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 유지되도록 파수꾼 역할도 하는 것이다.
계곡 언저리 바위에 앉아 발은 물속에 담그고 일행이 준비해 오신 체리, 복숭아, 감으로 입맛을 돋운다.
시원함에, 물소리, 자연소리 경쾌함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산속 저녁은 도심보다 일찍 찾아온다.
이제 발을 다시 씻고 등산화를 신어야 할 때다.
찻집 주인과 아쉬운 이별을 하고 계곡에 인사를 드리고 산속 계곡길을 따라 무주를 향해 차는 달린다.
돌아오는 길, 고냉지 채소밭도 만나고 콘도도 만난다.
무주리조트엔 휴가철이라 사람들로, 차로 붐빈다.
샛노란 원추리꽃이 그룹지어 피었다.
바람결에 흔들리며 지나는 우리에게 인사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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