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복(三伏)더위의 절정, 중복 날.
태양볕이 가장 뜨거워진 여름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어째서 연꽃은 이리도 더운날, 그 아름다운 자태를 피어낼까? 아마도 뿌리는 물 아래 진흙속에 묻혀 있고 연잎은 물위에 뜨니 더위를 모르는지도 모르겠다.
연꽃을 가리켜 꽃중의 군자(花中君子)라고 선인들은 찬양하기도 했고 수묵화 등에서 빠질 수 없는 그림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도 수묵화나 동양화를 그리는 화가분들은 연꽃을 즐겨
그리시는 분들이 많다. 그 만큼 아름다우면서도 깔끔하기 때문일까?
중국 송나라시대의 대학자인 주돈이는 "애련설(愛蓮說)" 이라는 글에서 연꽃을 짧은 글귀로 너무 아름답게 표현했기에 옮겨본다.
"연꽃은 진흙에서 났으나 더러움에 물들지 않고
맑은 물에 씻기어도 결코 오염하지 않다
줄기의 속을 허허롭게 바꾸고도 꼿꼿이 서 있으며
넝쿨지지도 않고 잔가지도 치지 아니한다.
향기는 멀수록 맑으며
깨끗한 몸가짐으로 우뚝 서 있으니
멀리서 바라볼 뿐 가까이서 희롱할 수는 없어라.
<정하용의 우리꽃 이야기>에서
오늘은 위 문장처럼 아름다운 연꽃을 만나기 위해 부여 궁남지로 가는 길이다.
우리 주변에서 연꽃을 만나기는 그리 쉽지 않다.
간혹 전통있는 한옥의 한정식집이나 사찰에서 커다란 함지박에 심어 연꽃을 피어내기는 하지만 소수이기에 그다지 큰 매력과 감동을 느끼지 못한다.
통상 함지박에는 수련을 많이 키운다.
대표적인 우리나라 연꽃 단지는 전남 무안,
회산 마을의 10만여평에 달하는 최대의 연꽃방죽, 그리고 함양의 상림 숲에 조성된 연꽃, 부여 궁남지, 전주 덕진공원 등이 아닐까 한다.
요즈음은 백련 홍련 황련 가시연등 그 종류도 다양하고 지방자치 단체에서 연꽃 축제를 겸하기 때문에 아주 화려하고 멋지게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어 방문자들을 설레게 만든다.
오늘 내가 다녀온 부여 서동 연꽃축제는 올해로 벌써 6회째를 맞았다.
7월 18일부터 8월 3일까지 부여 궁남지 일원에서 전시회, 이벤트, 경연대회, 체험상설 행사를 포함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었다.
해가 거듭할수록 규모면이나 짜임새면에서 많은 발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이번 방문으로 3번째 연속방문이다.
우선 주변이 많이 넓어졌고 연꽃이 더욱 많이 심어졌다. 주차장도 넓게 조성해서 옮겼다.
부여 가는 길
아직 논산 부여간 4차선 국도 확장포장공사가 끝나지 못하고 있었다. 정말 오래 걸리는 공사구간이다.
산도, 강도, 터널도 없건만 이토록 지지부진하는 건 왜일까?
물론 예산 탓이지만 혹자는 부여 사람들의 심성이 곱기 때문이란다.
공사 개기한지 10년도 넘나보다 다른 지방은 뻥뻥 뚫리고 있건만 이 고산은 왜 이리도 늦은지… 아직 끝부분 연결부위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년 연꽃축제 땐 뻥 뚫린 국도를 달릴 수 있으려나 기대해 본다.
읍내에 다다르자 부여 서동 연꽃 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도로위에서 여기저기 펄럭이고 있다.
행사장 안내판도 곳곳에 세워져 있어 운전자를 편리하게 만든다. 주차장이 바뀌었다.
차에게 내리니 바람하고 흐르는 연꽃향기가 먼저 나를 반긴다.
잘 다듬어진 뚝길 연꽃을 사이에 두고 배수로, 연꽃 단지, 뚝길, 원두막, 궁남지, 능수버들이 어우러져 멋진 풍경을 만들었다.
싱싱한 연잎, 백련, 홍련, 황련이 단지별로 모여 있다.
홍련은 지금 개화릐 피크를 이루고 있었지만 백련은 아직 조금 이른가보다. 수련 가시연은 이제 꽃망울만 내밀었을 뿐 피지 않았다. 때가 되지 않았나 보다.
붉고 여린 홍련
길게 뽑아올린 연꽃대
넓적한 연잎 싱싱함이 푸룻푸룻하다.
한차례 지나간 소나기 덕분에 연잎 중앙에 맑은 이승처럼 빗물이 고였다.
햇빛이 내리니 영롱한 빛 발하는 구슬이 되었다.
법정 스님 글중에 연잎에 대한 글이 있다.
연잎은 스스로 비울 줄 알기에 부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가 내리면 연잎의 오목한 부분에 빗물이 고인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양이 차면 스스로 버린다.
버리지 못하면 연잎대가 부러지든지 연잎이 꺾인다는 뜻으로 사람들에게 스스로 욕심을 줄일 것을 삶에서 버릴 줄 아는 교훈을 암시하는 글이다.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교훈이다.
궁남지를 중심으로 하고 사방이 연꽃단지가 되었다.
홍련, 백련, 황련이 따로 따로 조성되어 피었다.
넓다란 주변 논에 하나, 둘 연꽃을 심고 배수로에는 수련을 심었다.
그리고 그 연꽃사이로 통나무 길을 만들어 산책로를 만들었다. 아주가까이에서 연꽃을 대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백련 한송이 활짝 피었다.
대궁을 위로 빼올리고 섬세한 자태를 뽑낸다.
화려하지만 경망스럽지 않고 수수해 보이지만 그 고귀함을 잃지 않았다.
진흙 속에서 피어냈지만 말끔함을 유지하고 있다.
한송이 연꽃은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다.
순백의 아름다움, 그 속에서 은은히 풍겨오는 청순한 여인의 초상이다.
바람에 일렁일망정 꺾이지 않고 요란스런 향이 아닌 은은함으로 더 먼 곳에서 그 향기를 발한다. 수줍고 가녀린 여인처럼...
홍련의 핑크빛 아름다움,
백련의 하이얀 수줍음,
황련의 연노랑 깔끔함,
수련의 단아함.
이래서 연꽃 만나러 가는 길은 늘 즐겁다.
궁남지 연못가의 능수버들이 춤을 춘다.
연꽃향기 실어온 바람이 같이 춤을 추자고 보채는가 보다. 향기에 취하고 능수버들 늘어진 가지 춤에 취하고 나는 온통 사방으로 펼쳐진 연꽃 아름다움에 취한다.
연꽃길을 걷다가 꽃향기를 다시 맡아보고 연잎을 만져본다.
연꽃대의 자잘한 가시도 느낀다.
그리고 주변 원두막에 앉아 쉬면서 궁남지에서 뿜어올리는 물분수 모습에서 더위를 씻는다.
곳곳에 설치된 어름의자도 새롭다.
연꽃은 버리는 것이 없단다.
뿌리는 뿌리대로, 연잎은 연잎대로, 꽃은 꽃대로, 반찬도 만들고 차도 우려낸다.
진흙속에서 피어낸 한폭의 진주랄까?
오길 잘했다.
작년에도 왔었지만 갈수록 그 매력에 빠져드는 것 같다. 아름다움과 순수함에...
아마 내년 이맘때도 나는 이곳에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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