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님 장례를 마쳤다.
삼오제도 지냈고 첫 생신날 생신상도 차려드렸다.
이제 남은 건 탈상의 순서만 남았다.
죽음이란 누구나 맞이하는 어쩔 수 없는 하나의 과정이지만 처음 가족의 죽음을 맞이해본 자신으로선 그 느낌이 사뭇 달랐다.
남들은 90세이시면 호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끽하시고 가셨어야 하는데….
5시간이 넘는 고통스런 척추수술을 잘 이겨내시고 이제 아프지 않으신 몸으로 좀 더 나은 삶을 누리셨어야 하는데….
수술 마친지 겨우 8개월.
수술 고통의 아픔을 누리시기도 전에 또 다른 노환으로 삶을 마치셨다.
하지만 수술이후 연장된 삶을 고통없이 지낸 것으로 나는 만족하고 싶다. 아버님이 수술결과에 만족하셨기 때문이다.
마지막 떠나시던 날 조용히 눈을 감으셨다.
아버님은 큰 고통없이 하늘나라로 가셨기 때문이다.
단지 남겨두신 어머님에 대한 걱정은 안고 가셨으리라.
어머님은 아들들이 챙겨드릴테니 걱정하시지 마시라고 누차 말씀드렸지만 그래도 본인만큼은 못할 것이라 생각하셨나보다.
지금 이 시간도 저 하늘나라에서 어머님을 굽어보고 계실지도 모른다.
그래서 엊그제도 어머님께 다녀왔다.
아버님의 걱정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려고….
가는길에 아버님 산소에도 들러왔다.
아직 보름밖에 되지 않은 묘소지만 여름철 따사로운 햇빛과 자주 내려준 비 덕분에 심어 놓은 잔디가 푸릇푸릇 잎새하나 마르지 않고 잘 자라고 있었고 묘소앞에 삼오날 심은 회양목 조경수도 뿌리가 올바르게 내렸는지 푸르게 푸르게 하늘 향해 잎새를 키우고 있었다.
소주 한병, 마른 안주 하나 들고 찾았지만 아버님은 즐겁게 받으셨을 것이다.
평소 워낙 술을 좋아하셨으니까...
그저 ‘아버님, 저 왔습니다. 잘 계셨지요?’하면서 꾸벅 절을 올리고 묘소 주변을 다시 둘러보고 돌아왔다.
하지만 마음속은 뿌듯함을 느꼈다.
평화로움이 느껴졌다. 꼭 아버님을 만난 듯한 기분이었다.
왜일까? 묘한 감정이었다.
산을 내려오면서 다시 돌아보고 또 내려오면서 다시한번 쳐다보고….
저 만치 아버님이 서서 마치 손을 흔들고 계시는 것 같았다.
그것도 한없이 미소진 모습으로….
자동차를 돌리며 산소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내 눈은 산소를 향해 머물고 있었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장례식날 두고 온 국화꽃 바구니에 아직도 마르지 않은 꽃송이가 있었다.
빗물 덕분에 다시 피어난 모양이다.
다음에 갈 때는 예쁜 조화를 한다발 사들고 가려 한다.
묘소앞에 꽃병을 묻고 꽂아두고 싶어서다.
아무도 보아주는 이 없는 산자락이지만 아버님이 꽃을 좋아하셨기에 그 아름다움을 전하고 싶어서….
생화라면 더욱 좋겠지만 곧 시들어 버릴테니 너무 흉해 보일까봐서다.
아직 젯상도, 비석도 준비하지 않았다. 벌써 15년 전 아버님이 살아생전 가묘를 직접 만드시면서 어머님과 함께 합장해 줄 것을 희망하셨기 때문이다.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면 예쁘게 만들어 드리련다.
나무도 주변에 심고 꽃도 심으려 한다.
멀리하는 묘소가 아닌 손자들이 오고 싶어하는 그런 장소로 만들고 싶다.
포장된 도로에서 200여 미터만 걸어가면 되는 장소이기에 언제든 갈수 있고 그리 불편하지 않으니까.
어머님이 계신 K대 C병동.
주로 요양을 필요로 하는 노인병동이다.
치료 목적보다 마지막 여생을 보내시는 분들이 대부분인 노인요양병동.
대·소변도 스스로 해결 못하시는 분들도 많고 스스로 식사도 어려워 간병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이다.
우리 어머님도 이곳에 계신다.
크게 아프신 곳은 없지만 아버님 돌아가신 후 충격이 크셨는지 많이 야위셨다.
아직 3주밖에 되시지 않았는데 그렇게 많이 변하셨다.
식사를 통 하려 하시지 않는다.
먹기 싫단다, 맛이 없어 못 먹겠단다. 억지로 억지로 평소 식사량의 반밖에 드시지 않으시니 야윌 수밖에….
자식으로써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는 자신이 부끄러울 뿐이다.
물론 영양제 주사나 의사의 돌봄으로 크게 걱정은 되지 않지만 삶의 활력을 잃으신 것은 분명하시다.
어쩔 수 없는 죽음의 결과를 인정하시고 다시 생활을 추스려야 하는데…. 걱정이다.
이러다가 어머님마저 잘못될까 큰 걱정이다.
그 병동에서 어제는 이런 일이 있었다.
만든 말이 아닌 실화여서 여기 소개하고자 한다.
어머님과 한 병실을 쓰는 91세의 할머니. 바로 어머니 옆 병상이다.
내가 어머님 때문에 걱정을 하는 사이 그 할머니는 유난스럽게 나를 요모조모 바라보고 계셨다.
꽤 시간이 흘렀고, 나는 다시 돌아갈 생각을 하던 차에 그 할머니가 조용히 부르더니 나를 보고 아들을 삼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할머니의 보호자는 계시지 않았다.
그러면서 힘든 모습으로 자기는 딸만 둘이란다.
아들이 없단다. 고향이 어디신지, 자식들이 무엇하는지 물어보지 않았다.
그래서 냉큼 '아, 그러세요? 제가 아들되어 드리지요.' 했더니
'증말루? 증말루?'를 몇번이나 하셨다.
그리고는 '재산은 없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아들이 되어 주겠다고 너무 쉽게 말하는 것을 보고 혹시 죽음을 앞둔 할머니의 재산 욕심에
흑심을 품고 있을까봐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저도 강하게 말씀드렸다.
'먹고 살만해요, 재산 없으셔도 괜찮아요. 재산이 있으면 아들이 못되지요.'했더니 얼굴에 밝은 미소가 번졌다.
그러면서 우리 어머님 눈을 쳐다보시면서 승낙을 구하시는 눈치셨다.
너무 진지한 모습에 나는 어쩔 줄을 몰랐다.
평생 아들에 대한 사무침이 얼마나 깊었기에 처음 본 사람을 보고 저렇게 진지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이제 91세. 힘들어 보이시는 할머니.
건강도 좋지 않은 편이셨다.
그러면서 나에게 물을 좀 갖다 달라고 하시면서 아들이기에 시킨다는 재미있는 말씀을 하셨다.
아들에 대한 한(限)이 할머니의 가슴을 평생 멍들게 만드셨나 보다. 요즈음 아들들 별 필요도 없는데…. 효자도 옛말이다. 효녀는 있을망정.
세상이 그렇게 변해가고 있고 사실로 검증되고 있다.
이제 어머님을 뵈러 더 자주 가야겠다.
또 다른 어머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번에 가면 자세히 가족상황을 여쭈어보려 한다.
곧 죽음이 도래할지 모르는 연로하신 어느 할머니의 소원을 들어 주고 싶어서다.
인사드리고 나오자 건너오는 얘기는 "증말루(정말이지)"를 반복하시면서 손을 흔드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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