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아버님상을 치루고 허허로워진 마음에 그저 자연의 숲을 찾아 떠나보는 쉼이었다.
아오모리(靑森)
일본 혼슈섬에서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다.
북쪽은 아키타현이, 남동쪽은 이와테현이 있고 훗카이도와는 해저 '세이칸'터널로 연결되어
신칸센이 오가고 있는 섬이다.
총연장 53.85Km(해저부분 23.3Km)로 1988년 3월 개통되었다고 한다.
해협의 최고 수심은 140m인데 터널은 여기서 100m를 더 내려간 곳에 있다니 대단한 토목공사라 아니할 수 없다.
아오모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다. 인천공항에서 출발하는 대한항공이 일주일에 4편의 직항편을 띄운다.
아오모리 사과와 쌀, 옥수수 등 농산물이 주를 이루고 온천, 호수, 산악 계곡이 많아 세계 자연유산에 등록된 "시라카미 산지"를 비롯, 아름다운 경관과 풍부한 자연이 잘 보존된 지역이란다.
인천을 떠난 지 2시간여, 비행기는 아오모리 공항에 내릴 준비를 한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 본 주변은 온통 산과 들 뿐이다. 초록으로 깔려진 카페트라고나 할까, 초록일색이다.
예정대로 비행기는 착륙하고 한적한 시골 공항을 빠져 나간다.
국제선이라야 인천과 러시아 하바로스코프를 연결하는 2개 도시뿐이고 나머지는 일본 국내선 뿐이다.
한적한 시골고향같은 공항이다.
사람들도 크게 붐비지 않는다.
우리는 예정된 버스에 올라 나쿠아 시라카미호텔로 향한다.
사과의 도시답게 가로등 디자인도, 공항 안전구역도 모두가 사과모양 일색이다.
수확철이 되어가는 사과는 너무 예쁘게 붉은색으로 물들었다.
태양광선을 받기 위해 바닥엔 은박지가 깔려있다. 사과 밑부분에도 햇볕이 반사되도록 하기 위함인가 보다.
차창을 여니, 신선한 바람에 사과의 향까지 가미되어 몰려온다.
구불구불 2차선 도로변엔 마치 사과나무가 가로수처럼 열병을 서고 있다.
이곳 아오모리 사과는 일본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잘 알려진 브랜드 덕분에 충분한 경쟁력이 있단다.
가는 길에 휴게소에 들렸다.
온통 사과를 주원료로 한 제품이 즐비하다.
사과잼, 사과술, 사과파이 등 사과를 원료로 한 이곳만의 식료품이 방문자의 지갑을 열게 만든다.
게다가 가리비, 성게, 대게 등 풍부한 해산물까지 입맛을 당긴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온천이 우리를 유혹한다.
일본은 전국이 온천이라 해도 잘못된 말이 아닐 정도로 온천이 많다.
화산의 영향때문이리라.
이 산속 아오모리에도 온천은 예외가 아니다.
피곤한 몸을 뜨거운 온천에 푹 담근다는 개념만으로도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유카다'라고 불리는 욕의(浴衣)
우리나라 두루마기같은 가운이다. 남여공용이다.
일본 온천관광지에선 유카다를 걸치고 온천탕은 물론 주변상가, 술집까지도 갈 수 있어 편하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
온천탕은 작았지만 깔끔했다.
하늘이 보이는 노천탕은 자연의 숨결을 느끼기에 더욱 좋다.
뜨거운 온천물에 몸을 담그고 얼굴만 내놓는다.
바람이 불고, 벌레소리 들리고, 가끔은 나뭇잎새가 탕 위로 떨어져 작은 종이배처럼 일렁인다.
밤엔 별들이 하늘에 무수히 뜨고 부엉이 소리는 밤의 적막을 깬다.
우수수 바람소리가 들리며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노천탕의 수증기를 이리저리 몰고 간다.
그 속에서 잠시 눈을 감으면 스스로 떠오르는 기분이 든다.
이게 진정한 쉼이요, 휴가가 아닐까?
삶의 주변에서 잠시 떠나 모든 것을 망각하고 오직 이순간 온천물의 뜨거움만 느끼고 싶다.
그게 이곳 아오모리 산속 계곡의 참멋이라 생각된다.
다음날 아침,
우린 '아지가자와'정상에 오르기로 했다.
겨울철 스키장 전용으로 쓰는 곤도라를 타고 오르는 그들의 표현대로 쓰자면 '공중산보'다.
편도 15분이 걸리는 긴 거리다.
이와테산 정상은 1,621m이지만 곤도라가 921m까지 오른다.
문이 닫히고, 우리를 실은 곤도라 캡슐은 산 정상을 향해 빠르게 오른다.
산 아래 펼쳐지는 계곡, 스키 슬로프. 그 사이사이 천연림이 빼곡하다. 아마도 사람이 한번도 들어간 적이 없는 생태림일지도 모른다.
자연의 생태계도 삶은 치열하다.
성장하지 못하면 태양빛을 받을 수 없어 고사하고 말 것이기에 삶의 성장을 그들도 늦출 수가 없는 경쟁의 연속이리라.
게다가 덩굴식물이 나무타고 오르고, 가끔은 계곡물이 불어 주변 나무를 쓸어버리고 만다.
얽히고설키고, 말라죽은 나무까지 천연 생태림은 온통 초록의 물결이라 나무아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스키 슬로프 부분은 1년생 초식들이라 온통 억새뿐이다.
억새밭을 만들었다. 그들은 거의 산정상까지 뿌리를 내렸다.
바람이 분다. 억새가 흔들린다. 서걱서걱 억새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아니, 그것은 울음이 아닌 그들의 찬가일지도 모른다.
이제 남은 생의 기간을 그들도 안다.
붉은 억새꽃은 하나 둘 흰색으로 바뀌며 씨앗을 영근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면 그들은 하얗게 말라 버릴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씨앗은 또 그 자리에서 새로운 생을 이어가리라.
억새들도 삶의 지혜를 만들었다.
홀로 삐죽이 살아났다면 모진 바람에 꺾이고 말았으리라.
하지만 그들은 집단으로 생을 키웠기에 바람에 꺾이지 않는 지혜를 가졌다.
나는 그것을 보니 역시 사람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자연에서 배웠다.
산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자연은 정말 신선했고, 장엄했다.
나무 하나, 풀포기 하나. 야생화 한송이.
모두가 나름대로 꿈을 키우며 싱그럽게 자라고 있었다.
이제 머지않아 이곳엔 많은 눈이 쌓이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눈 속에서 겨울잠을 자고 또 내년의 늦은 봄을 기다릴 것이다.
靑森(아오모리)
그곳은 자연의 보고였다. 참다운 쉼의 고장이었다.
문명에서 조금 비켜진 곳이지만 그 나름대로 아름다움이 있었다.
잘 쉬고, 잘 먹고, 잘 구경한 여행이었기에 아쉬움이 없다. 즐거운 3박4일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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