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절이 하 수상하니 -
병자호란으로 인질이 되어 청나라를 향하면서 처참한 심정으로 표현한 김상헌선생의 ‘시절이 하 수상하니’ 라는 싯귀가 언제 어디서나 적절히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는 격동의 세월을 살아 왔다.
가까운 근대만 보더라도 조선의 몰락과 일제의 지배, 해방과 곧 이은 6?25전쟁, 그리고 전후의 고단한 삶, 4?19와 5?16, 유신과 12?12, 광주항쟁과 6월 항쟁 등등..... 돌아보기조차 숨가쁜 세월을 우리는 살아 왔다.
10년 전에 IMF 구제금융을 받아야 파산을 막을 수 있는 처지에 처했을 때 ‘이런 어려움이 다시 올까?’ 하는 생각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더 어려운 처지를 걱정하고 있다.
작금의 우리 사는 모습은 매일 쏟아져 나오는 소식들이 하루는 희망을, 또 다른 하루는 절망을 갖게 만드는 ‘하 수상한 시절’임에 틀림없다.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도 세계적인 어려움의 와중에서 벗어날 수는 없어 일부 주식거래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군민 전체가 어려워진 경제적 상황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별로 없어 보인다.
옛날 사람들은 교통과 정보의 전달속도가 매우 느렸기 때문에 지금과는 상황이 달라서 좋은 일의 전달도 늦었겠지만, 어려운 일 또한 전달되는 속도가 느렸을 것이다.
병자호란을 겪을 때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사람들의 삶은 어땠을까? 내 생각으로는 그리 큰 영향을 주지 않았을 것 같다.
중앙정치의 태풍이 이곳 산골짜기까지 전해질 때쯤 되면 조금 센 바람 정도로 약화되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미국 경제가 재채기를 하면 한국 경제는 독감 걸린다’는 얘기가 돌아다닌 지는 벌써 수십년도 더 되었지만, 이제는 미국에서 주식 가격이 떨어지면 몇 시간 후에 당장 한국 경제가 곤두박질치는 상황을 우리는 심심치 않게 보고 있다.
- 세계화 속의 금산, 그리고 인삼 -
이런 어려움이 우리가 살고 있는 금산에도 고스란히 파고드는 것을 우리는 피부로 느끼고 있다.
인삼이 잘 팔리지 않고, 팔려도 채당 2만원 내외의 중저가 삼만 팔리고 있다고 하고, 재고가 쌓이면서 자금이 묶인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식당에는 손님이 2-30% 줄었다고 울상이고, 저온창고에는 팔리지 않은 인삼이 많이 쌓여 있다고 한다.
병자호란은 분명히 나라의 안위를 걱정해야 하는 국가적 위기였지만 정작 금산에 살던 분들은 별로 큰 영향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세계화는 금산이 국가적 어려움에서 피난하는 곳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다.
우리가 ‘세계화’ 를 떠올릴 때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발전, 선진, 소통 등의 이미지는 좋은 시절의 얘기이고 어려운 시절이 돌아오자 세계 어디를 가도 피할 수 없는 ‘세계화의 어두운 면을 우리는 겪고 있는 것이다.
인삼재배면적은 엄청나게 늘어 생산량도 같이 늘어난 반면에 불경기로 소비가 줄어들게 되니 지역 경제 전체가 잘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금산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금산이 언제까지나 인삼과 약초를 견인차로 경제를 끌어갈 수 있을까? 우리가 인삼과 약초로 먹고 살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남았을까?
서울에 올라가 지하철을 타면 우리나라 인삼은 풍기에서만 나는 것 같다.
어떤 이가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명장(明匠)’이라며 돈을 처들여 광고를 하고 있다.
우리가 금산인삼을 명품화 하기 위해 금산군이 앞장서서 ‘금홍(錦紅)’ 브랜드를 만들어낸 것은 참으로 시의적절하다.
최근에는 금홍 브랜드로 수출까지 하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이런 노력들이 금산인삼의 성가(聲價)를 높이고 금산이 인삼으로 먹고 살 수 있는 시기를 늘리는 좋은 방법일 것이다.
그렇지만 인삼만으로 상품을 고급화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나갔고, 인삼에 금산문화를, 그리고 인삼에 건강하고 살기 좋은 마을 금산을 접목해야 한다는 것을 금산에 사는 대부분의 주민들은 인식하고 있다.
- 꾸준히 추진되고 있는 건강도시 프로젝트 -
살기 좋은 마을 금산을 만들기 위한 여러 노력 중 현재 시행되고 있는 선두주자는 단연 건강도시 프로젝트이다.
금산에 사는 모든 주민들이 건강하게 살게 하기 위한 노력이 바로 건강도시 프로젝트이니, 이 사업이 잘 된다면 건강한 금산, 인삼/약초와 함께 하는 금산이 저절로 형성될 것이다.
그만큼 건강도시 프로젝트는 금산이 나아갈 미래상을 제시할 수 있는 계획이지만, 그만큼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지난 11월 18일에 건강도시 사업에 대한 평가회의가 금산군청에서 열렸다.
금산이 군 단위로서는 최초로 WHO에서 인증하는 건강도시에 가입했고, 건강도시의 이름으로 수많은 프로그램을 금산군보건소를 중심으로 시행하고 있다는 분들도 별로 없을 것 같다.
그렇지만 금산은 이 분야에 있어서 전국적으로는 물론 범아시아적으로 유명한 동네가 되었다.
충남대학의 김건엽교수와 중부대학의 서정교교수가 이론적 배경을 제시하고 금산군보건소에서 의욕적으로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에는 일본까지 가서 WHO와 AFHC에서 수여하는 큰 상을 받아가지고 왔다.
나는 정길호팀장이 지난 1년간의 사업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그동안 한 일이 많았다는 것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고 싶었지만 추진한 사업 중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한 사업 두 개에 대해서는 재평가, 정리하는 방향을 잡았다는 얘기를 들으면서 ‘이 사람들이 참 일을 제대로 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무엇을 그만둘 줄 아는 지혜’ 는 아무나 갖는 것이 아니라 정말 열심히 일을 한 사람들에게서 얻어질 수 있는 결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실천하면서 살지만 무엇을 중단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는 쉽지 않다.
주식시장에서 얘기하는 ‘손절매’가 이에 해당할 것 같은데, 손절매를 하지 못해 패가망신 당사는 사람이 부지기수라는 것을 보면 얼마나 중단하는 것이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어떤 일을 추진하다 잘 되지 않아 포기했다고 하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기 마련이지만 ‘실패의 경험’ 없이 이루어진 성공은 모래성일 수 있기 때문에 시도와 평가에 따른 포기는 결코 헛수고가 아닌 하나의 자산이 될 것이다.
GM과 시어스와 IBM은 미국이 자랑하던 세계 제일의 기업이었다.
이제 그 기업들이 이미 망했거나 망해가고 있다. 경제학자들은 이렇게 얘기한다.
‘이 회사들이 잘못한 일은 하나도 없다.
다만 그들은 과거의 성공에 취해 개혁이 필요할 때 개혁을 하지 못했던 것 뿐이다.’
실패에서 배우는 경험이 개인과 기업을 성공으로 이끈다는 것은 생각하기 힘든 진리이다.
금산군의 행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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