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세시 명절의 하나인 정월 대보름, 상원(上元)이라고도 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내 어릴적엔 대부분 농경중심의 사회였다
정월 대보름이 되면 한 겨우내 쉬던 농한기가 지나고
농사철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대동회라고 하여 작은 마을 축제가 열리기도 했다
농악이 울리고 윷놀이가 펼쳐지고 막걸리가 흥을 돋우는 그런날 이었다
대보름전날
나는 늘 양조장으로 주전자를 들고 막걸리를 사러가야 했다
보름날 새벽에 어른들이 드셔야 할 귀밝이 술 때문이었다
심부름은 언제나 내 몫이었다.양조장도 집에서 멀었다
면사무소 근방에 있었다. 노란 주전자. 양조장에서는 되박으로 담아 주기보다
주전자에 그득 채워 주었다 동네에도 막걸리를 파는 주막이 있었지만
값도 비싸고, 양도 적게 주었기 때문에 늘 양조장 으로 가야했다.
터덜,터덜 주전자를 들고 오다가 주둥이에 입을 대고 조금씩 마시기도 했다
그 덕분에(?) 지금의 주량이 된것은 아닐까?
집에 도착할 쯤 양이 줄은듯 하면 주전자에 물을 타서 마신양 만큼 채우기도 했다
보름날 아침, 깨자 마자 부럼을 깬다.주로 호두였다
집앞에 호두나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야 부스럼없이 한해를 지낼 수
있다고 했다. 그 당시 비위생적인 생활 때문인지 모두들 부스럼이 많았다
그리고 어르신들은 귀밝이 술을 드셨다
아이들에게도 조금씩 마시도록 권유했다.귀와 눈이 밝아진다고 했다
무슨 의미인지, 맛 인지도 모르고 그저 마셨던 기억이 아직 남았다
그리고 아침밥은 찰밥에 멧쌀, 조, 수수, 보리, 콩등을 넣은
오곡밥에 고사리, 시래기, 무우채, 호박고지등 묵은 나물과 콩나물
등의 나물이 곁드려졌다 보름날 특식이다
학교 가는길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 더위 사가라"고 먼저 소리친다
그래야 더위 먹지 않고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다
아마도 주술적 의미였으리라, 서로 먼저 할려고 난리들 이었다.
정월 대 보름의 하이라이트는 초저녁 망월(望月) 놀이였다.
일종의 달맞이 행사였다 우선 초저녁 달이 뜨기전 마을의 동산으로 오른다
손에는 횃불 돌리기에 사용될 깡통과 소나무 관솔을 가득 준비해 들었다
그 당시는 빈 깡통 구하기도 어려웠다
우선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여기,저기 내야 하다 그리고 자기 키에 맞추어 전선으로
끈을 만든다 깡통속에 소나무 진이 듬뿍 말라버린 관솔을 넣고
불을 지핀후 전선줄을 잡고 팔로 원형으로 돌린다
구멍난 깡통 사이로 바람이 들고 회전력에 의해 활활 타오르는
불은 원형의 횃붙이 된다 그러면서 저 아래 빈밭으로 던져버리면
요즈음의 불꽃놀이 처럼 불은 궤적을 남기며 떨어진다
그러기를 반복한다 그 당시 나이롱 점퍼는 비쌌다
하지만 불똥은 나이롱 점퍼에 여기,저기 구멍을 만들어 어머님께 심한 꾸중을
듣기도 했다 불 담긴 깡통을 돌리고 던지기를 반복하다가 동쪽산 넘어 에서
커다란 보름달이 떠오르면 모두들 달을 향해 큰절을 올리고 소원을 빌었다
정말 보름달은 크게 보였다. 아니 컸다
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방아 찧는 모습이 선명 할 정도로 컸다 그리고
노오란 달 모습이 어린 내 마음에도 평상시 달과 다르다고 생각되었다
어릴적 나는 무슨 소원을 빌었을까?
지금이야 늘 건강하고 가족이 화목했으면 하는 마음이지만 그 당시는
아이들 때라 건강은 걱정하지 않고 공부 잘하게 해달라고 단순하게 빌었던것 같다
꼭 1등하게 해달라고 중학교가면 장학생 될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던것 같다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으리라
그 당시만 해도 지금으로선 이해할수 없는 미신이 많았다 안택이라고 해서
무당이 북과 징을 치면서 시루떡 해 놓고 밤새도록 기원하는 행사가 종종 있었고
서낭당 고개길을 오가며 돌을 던지고 어른들은 밤에 가서 새끼줄을 치고
떡과 과일을 놓고 빌기도 했다
지금도 그 서낭당 언덕길엔 우리가 오가며 쌓았던 돌 무덤이 남아있다
단지 변한것은 그 상태에서 멈추어 버렸고 신작로로 사람들이
오가고 있기에 그 길은 없어졌고 무성한 산이 되어 버린것 뿐이다
그렇게 맞이했던 정월 대보름
지금은 전통 달맞이 행사로 몇몇 지자체에서 그 명맥만 유지되고 있을뿐이다
달집 태우기 행사가 그 망월놀이를 대신하고 있다
지금은 산에 나무도 많고 숲이 울창하여 예전 같은 불놀이는 할 수 가 없다
우선 산불조심을 해야하기도 하지만 그런 깡통 횃불을 돌릴만한 아이들이
시골엔 없다 모두들 교육때문에 도심으로 나왔다
그런 여유를 찾기보다 상급학교 시험 대비를 위한 학원 가기가 바쁜
아이들이 되었다. 진정한 삶은 무었일까?
치열한 경쟁속에 스스로 침몰하는 모습들
취업이 어려운 현실, 학원 3,4개를 다녀야 하는 어린이들, 그보다 더 한것은
초등생을 유학 시키는 부모들
엄마는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같이 외국생활을 하고,아빠는 외롭게
한국에서 돈 벌며 생활하는, 소위 기러기 아빠들의 초상.
무엇이 정답일까? 꼭 그렇게 해야할까?
삶은 유한한 것인데...
아직도 정월 대보름의 전통은 이어진다
부럼을 깨물기위해 견과류가 장날 그득하게 쌓여있고 오곡밥에
나물들이 재래시장을 채웠다
내 어린시절
알싸한 정월 대보름의 추억
이젠 TV에서 그 날의 불꽃놀이 모습을
달집 태우기 영상으로 대신해야 할까보다.
아니 오늘저녁
아파트 뒷편 동산 에라도 올라 보름달이라도 맞이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정월 대 보름을 맞아 어린시절 생각에 빠져
몇자 적어본 나의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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