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웅기(1931-2005) /수필가
- 권력지향(權力指向)편 -
3. 수도숭배
어떤 실업자가 직장을 찾으려고 신문에 난 구인광고를 날마다 들추어 보았다. 가까운 지방도시 신문의 구인란은 한산하기만 하고 서울에서는 사람을 구하는 소리가 높았다. 서울의 인구 흡인력은 매우 크다. 동네 노인에게 서울의 인구가 충청남도의 인구와 맞먹는다고 하였더니 믿지를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십여 년 전의 이야기이고 지금은 그 좁은 땅에 두 도(道)가량의 사람을 합친 인구보다 더 많이 모여 산다. 산업이 발전하면 인구가 도시로 몰리게 마련이지만, 서울의 인구 증가율은 좀 상식 밖의 일이다. 다른 도시를 제쳐놓고 혼자만 유독 살이 쪄간다.
서울은 인구를 많이 가지듯, 정치든 문화든 대부분을 움켜쥐었고 모든 것의 중심이다. 전람회를 보려면 미술이고 과학이고 서울까지 가야 한다. 지식인들의 눈조차 대체로 서울에 머물러 있어서 생생한 지방 모습을 잘 모른다. 유행은 서울에서만 만들어져 나오고 영화, 음반 같은 예술 역시 마찬가지다. 지방에는 뉴스거리가 없다는 듯이 전국으로 나가는 언론매체마저 서울일색이다. 서울사람의 말마따나 지방은 모두 시골이다. 지방문화란 극지대(極地帶)의 산물이다.
인구도 그렇지만 이렇듯 한쪽으로만 향한 쏠림도 분명 기이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선 화폐 통화량만 봐도 대부분이 서울에 모여 있다. 큼직한 기업체는 대개 서울에 자리하며 지방에 공장이 있어도 본사만은 서울에 둔다. 어쩌면 그것은 경제 또한 정치권력에 너무 의존하기 때문에 서울에만 모두 몰리는지도 모른다. 경제계를 한 번 들여다보아도 한국에는 재벌이 많지만 벌거벗고 밑바닥에서부터 춥게 혼자 쌓아 올라간 경우는 드물다. 지금은 모두 큰 기침을 하지만 대부분은 중앙권력의 따뜻한 특혜를 입고 급작스럽게 자라났다.
역사 또한 옛날부터 정치의 보호에서 떨어져 나와 스스로 자란 경우가 별로 없다. 불교나 유교, 예술마저 왕권의 보살핌에 따라 흥망성쇠를 달리했다. 첨성대도 한글도 조정(朝廷)에서 만들어졌고 그곳에서 흥미를 잃자 싸늘한 그늘에서 살았다. 무엇이고 권력이 나서서 마련해 주지 않으면 제대로 자라나지를 못했다. 이조(李朝) 오백년 내내 상업과 공업은 미미할 뿐이었다. 한양의 귀족들이 근대산업의 대두(大頭)를 눌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오랜 기간 동안 문화나 경제 역시 권력을 수도로 받드는 소도시들인 셈이었다.
이런 집중현상은 정치로 가서는 극에 달한다 하겠다. 지방 정당은 그저 그 다스림을 받는다. 중앙의 권력들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하여 벌이는 이합집산 정도가 지방의 세력이 될 뿐이다. 행정도 매한가지로 지방 하부관청은 결정권이 많지 못하다. 위에서 정해진 일을 실행할 뿐이기 때문에 상부에서 방침이 조금만 달라져도 아래서는 커다란 변동을 겪는다. 옛날부터 그렇게 중앙집권으로 해왔으니 오랜 기간 동안 봉건제도도 사실 없었다.
그러니 가령 조그만 제조허가 하나를 내고 학교인가를 얻는데도 서울에서 결재가 나오게 되어 있다. 직장 역시 서울로 배치를 받아야 좋은 자리에 들어간다. 그래서 서울의 권력 가까이에 있으면 여러 가지로 유리한 혜택이나 위치를 얻게 된다. 서울로 향한 인구집중은 말하자면 옛날부터의 권력지향의 현대적 숫자적 표현이랄 수 있다.
중앙집권은 능률을 올리기에는 좋으나 획일로 흐르고 실정(實情)과 멀어지는 수가 많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약점은 사회든 경제든 허약성이 끼어든다는 것이다. 전쟁이 터져 서울이 점령되자 지방은 갈팡질팡하며 방위문제는 고사하고 피난에 대해서도 말 한마디 못했다. 서울 한켠에 공비 몇 명이 나타나니 온 나라가 떠들썩했다. 서울에서 정치변동이 일어나면 지방은 멍하니 구경하다가 뒤따라갈 줄밖에 모른다. 수도를 너무나 숭배하고 있다.
역사는 대중의 마음을 쌓아올린 시간의 탑이다. 자아가 의지를 잃고 바깥에 기댈 때, 기울어진 탑을 받쳐야 하는 몫은 후손들이 져야한다. 생각의 화폭에 그리는 그대로 역사는 이루어진다. 수도로 인구가 모여드는 지리적 현상은 깊숙이 허상으로 자리 잡고 있는 권력숭배의 모습에 불과하다.
몸이 뿌리내리고 사는 곳을 잊고 수도만 바라보는 이 해바라기의 모습은 우리 것을 잊고 외국 것을 동경하는 사대(事大)와도 통한다.
내 마음 안에 내 수도를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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