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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맞으며 벌초 하던 날

오늘은 벌초 하기로 형제들과 약속된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주룩 주룩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전화로 알아보면 금방 알겠지만 일단 전화없이 출발 하기로 하고 곤히 잠든 대학생 아들을 깨운다. 토요일 수업이 없기에 동행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같이 가서 크게 도움을 바래기보다 조상에 대한 예의를 손수 체험하고 알려주기 위함에서다.
우선 첫 말이 비가 오는데 가야하느냐고 묻는다.

이곳 대전은 비가 오지만 충주는 안 올지도 모른다며 서둘러 출발했다.

서로서로 바쁘기에 부모님 산소에서 아침 08:00시에 만나기로 사전에 약속을 해두었기에 시간을 맞추기 위함에서다.

충주로 가는 길.
차는 밀리지 않았지만 비는 갈수록 더욱 세차게 차창을 두드렸다.

도로위에도 물이 고이고 주변 작은 하천엔 황토빛 물이 넘실대며 흐르고 있었다.

꽉 낀 구름은 주변마저 어둠 컴컴하게 만들고 이따금 우르릉 쾅쾅하며 천둥도 친다.
그렇게 달리기를 2시간.

예정보다 조금 늦게 충주에 도착할쯤 형님께서 전화를 주셨다.
오는 중이냐고? 거의 다왔다고 말씀드리자 일단 산소에서 만나자고 하셨다.

평택에 있는 동생에게서 전화가 왔다. 늦잠을 잤는데 평택엔 비가 많이 내리는데 벌초 하실건지를 묻는다.
그래서 일단 출발 하지 않았으면 오지 말라고 했다. 괜히 빗길을 서둘다 보면 교통 사고도 우려되기 때문에서다.

비는 사정없이 내리고 멈출줄을 모른다.
새벽 대전에서 출발할때보다 더욱 세차게 내린다. 산소에 도착하니 형님께서 먼저 오셔서 기다리고 계셨다.

일단 다음 주에 또 오려니 약속도 있고 해서 준비해간 우비를 입고 산에 오른다. 벌초를 강행하기로 했다.
제초기가 돌아가고 우비를 챙기며 낫을 들었다.
우연일까? 공교롭게도 세차던 비가 그치진 않았지만 많이 줄어들었다. 충분히 벌초를 할 수 있을 정도다.

1년간 자란 잡초는 무성했다. 형님은 제초기를 잡고 나는 깍인 풀을 제거하며 부모님 산소 주변을 말끔히깍아낸다. 그 사이 수원에 사는 막내부부도 도착했다.

비는 내리고 있지만 예정대로 벌초를 마칠 수 있었다.
부모님 돌아가신지 꼭 2년이 되었다.

산소앞 부분과 봉분의 잔디는 빼곡히 자랐지만 뒤편은 다소 빈자리 때문에 황토흙이 보인다. 내년  봄철 한식때쯤 다시 잔듸를 식재해야겠다.

부모님 산소 바로 앞은 과수원이다. 푸른 부사가 많이도 달렸다. 아직 수확철이 아닌가 보다.

비가 자주내려 일조량이 부족해 걱정이라면서 주인은 빗물이 잘 빠지도록 삽으로 도랑을  만들면서 비가 내려도 일을 하고 계셨다. 참으로 농사일은 힘들다. 비가오나 맑으나 논과 밭에서  떠날수가 없다.

기계화 영농으로 예전에 비해 많이 성력화되었지만 아직도 농부의 손길을 필요로 한다.
힘들고 그에비해 소득이 적으니 젊은이들은 도시로 빠져 나가고 시골에는 연세드신 분들만이 남아 있으면서 농사일을 하고 계신다.

어쩔수 없는 현실이다. 농산물이 비싸면 동남아에서 대량으로 수입되니 가격도 현실화 되기가 어렵다. 세계 무역 자유화협정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영되던 관세부과도 정부 마음대로 이젠 할수가 없다.

벌초를 마치고 나무그늘에서 비를 피하며 과수원 주인과 현실적인 얘기를 나누었다.
이제 다시 가야한다. 부모님께 추석날 다시뵙겠다고 인사드리고 도구를 챙겨 산에서 내려온다. 이렇게 왔다 가기라도 하면 나는 마음이 참 편하다.

저승의 삶을 알수는 없지만 꼭 부모님을 뵙고 가는 기분이 든다.
무언의 대화를 부모님과 나눈다.

“하늘나라에는 아픔이 없지요”라고 엿주어 보기도 한다.
돌아가시기전 통증으로 고생을 하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고향을 일부러 찾기가 정말 어렵다.
하지만 충주갈 기회만 생기면 꼭 산소에 들려 절을 올리고 간다.

작지만  소주한병, 마른 안주 준비해 인사드린다. 설령 늦어도 들린다.
시내 중심가에서 좀 멀긴 하지만 들렸다 가는 길은 참 평화롭고 마음이 편하다.

기분좋음을 스스로 느낀다. 지난번 한번은 일본인과 함께 충주 거레처를  방문 한적이 있었다. 거래처에서 회의가  늦어 어둑어둑 했지만 양해를 구하고  가는 길에 들렸던 적도 있었다.

아직도 비가 내린다. 올때보다 개울물이 많이 불어났다.
우리가 초등학교 다닐땐 여름철 비가  많이 내리면 수업을 중단하고 마을별로 일찍 귀가를 시켰다.

냇가를 건너야 하는 곳이 많아 위험하기 때문이었다.지금이야 도로도 좋고 작은 냇가라도 전부 교량이 놓여져 있지만 그 당시는 얼기설기 붙잡아 매어 놓은 나무다리가 전부였고 큰 비라도 내리면 떠내려가고 말았다. 그러면 다리를 다시 만들때까지  늘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너야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대전으로 돌아 오는길.
비는 내렸지만 서두름 없는 귀가길은 바쁨이 느껴지지 않았다.

금년 벌초는 우중에서도 이렇게 마무리되었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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