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들 - 금산신문

만리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함석헌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中일부

언제 읽고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한 글이다.
친구, 벗, 동료라 표현되는 사람을 두고 정말 솔직담백하게 써내려간 가슴 아린 글이다.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을 가지고 있는가?
아니 그 누구라고 즉답 할 수 있는가. 아니면 내 친구중 그 누군가가 나를 그런 사람이라고 지칭 할 수 있는 믿음직한 사람인가. 다시 한번 헤아려 본다.

“글쎄”라는 부정도 긍정도 아닌 스스로의 대답이 먼저 앞선다.
각박한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내 가족 내 친척도 아닌 사람으로서 그런 친구가 있다면 그 사람은 둘 다 정말 행복한 사람이다.

친구.
어릴 적 소꿉친구라는 단순한 관계에서부터 평생 살아가면서 삶을 얘기하고 의지하고 서로 도와 가는 관계를 영속 할 수 있는 친구는 그리 많지 않다.

모두들 자기 삶에 바빠 그토록 끈끈한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주 주말, 충주 수안보에서 靑友會라는 벗들의 정기 모임이 있었다. 년 1회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마음에 맞는 동료 7명이 고교 졸업 전 결성한 모임이다.

‘69년 시작했으니 벌써 35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처음에는 그저 만나 자장면 시켜 놓고 오가피술 한잔하는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물론 중간 중간 건너뛰기도 했지만 그래도 매년 1회 정기 모임을 갖고 있다. 중간에 시차는 있지만 결혼도 했고 군대도 갔가 왔고 벌써 손주를 둔 친구도 있다. 정말 할아버지가 된 것이다.

나처럼 직장에 다니는 사람이 세 사람이고 대학교수, 자영사업가 두 사람, 국영기업체 중년 간부로 근무 중이어서 모두들 나름대로의 안정된 삶을 꾸려 가고 있다.

이제 자녀들도 모두 대학을 졸업했거나 재학중이에서 몇 년 전부터 남자들 모임만이 아닌 부부동반 모임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서울, 수원, 대전, 대구, 울산에 각각 흩어져 있어 지역별로 돌아가면서 모임을 갖고 있지만 금년엔 고향 충주에서 모였다.

토요일 저녁, 수안보에서 모두 모여 맛있기로 소문난 한정식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면서 1년 동안 지낸 얘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살아가는 얘기, 직장얘기, 현 상황의 국가경제 얘기 그리고 자식들 얘기까지.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대화는 계속된다. 집 사람들은 집사람들대로 대화의 꽃을 피운다.

소주가 한잔, 두잔 돌기 시작하자 다시 대화는 우리가 학교 다니던 시절의 어렵던 생활 얘기로 되돌아갔다.

그 당시 경제적으로 정말 어렵기도 했지만 모두가 집안 일, 농사일 도우면서도 열심히 공부했는데 요즈음 자녀들은 그렇지 않다는 등 지난 과거 우리가 성장했던 시절과 현실을 비교하면서 모두들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샌드위치 세대” 아마도 우리가 그 세대에 해당할 것이라고 모두들 목청을 높인다. 우리 세대는 연로하신 부모님 부양해야 하고 자식들 책임져야 한다. 하지만 우리 자식들은 먼 훗날 우리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노후 보장 연금 같은 것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 세대가 노후에 그 혜택을 받아 충분하게 생활하기엔 턱 없이 부족 할 것이다.

자식들도 효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스스로의 생활 꾸려가기도 어려운 줄 모른다. 그 만큼 살아가기가 힘든 세상이 될 듯싶다. 모두들 효도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로 귀결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들 한마디로 스스로 자신이 건강해야 한다는데 동감한다.
발달된 의술과 약들로 수명은 늘어나고 그에 따라 점차 노령화 인구는 늘어간다. 하지만 환경 영향 등으로 치매, 뇌졸증, 중풍 등 노인성 질환은 증가한다.

오래 사는 것보다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 스스로 죽는 날까지 움직이고 그야말로 “밤새 안녕”이라는 식으로 저 세상으로 가야 하는게 최상의 목표지만 죽는 것도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는게 아니다.

아직 모두들 건강을 우려 할 나이는 아니지만 지금부터 건강관리에 힘써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1년에 한번 건강 검진은 필수 사항이고 보약 등 약으로 해결하려기보다 스스로 움직여 운동해야 한다고 말한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노래방으로 옮긴다. 7명의 부부 모두 14명이다. 꽤 큰방이지만 방이 꽉 찬다. 모두들 처음엔 망설이다가 흥이 오르자 마이크 잡기가 어렵다.

모두가 옛 노래다. 그 시절 사람들이라 어쩔 수 없으리라. 요즈음 젊은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는 가사 따라 가기가 너무 벅차다.

밤은 깊어가고 서로의 우정은 하나, 둘 공든 탑처럼 쌓여 간다. 이제 몇 년 후부터는 자녀들의 혼사도 있을 것이고 모임도 더욱 바빠지리라 생각된다.

지금은 직장 생활 때문에 먼 길 가는 일정 잡기가 어렵기에 몇 년 후 시간적 여유가 있으면 가까운 해외라도 같이 가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 회비를 좀더 내어서 저축하기로 했는데 여자들은 시큰둥하다. 미래보다 현실의 주머니 걱정 때문이다.

이튿날 아침. 밤의 피로를 수안보 온천물에 말끔히 씻고 주변 월악산으로 차를 돌린다. 월악산 정상은 시간적으로 어렵기에 중간 절까지만 오르기로 했다.

송계계곡을 따라 시원스럽게 드라이브를 하며 북상하면 덕주골이 나온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마의태자 여동생인 덕주 공주가 세웠다는 덕주사를 향해 오른다.

옛 절은 6·25때 불탔고 지금 절은 새로 지은 것이다.
시멘트로 포장된 길. 운치는 적지만 질척거림 없어 걷기는 딱 좋다. 절까지 약 2Km정도. 약간의 오르막길. 힘들지 않다.

오가는 사람 가볍게 인사하니 정겹고 가끔 옛 덕주산 성의 흔적도 도처에 남아 있어 지루하지 않다.

아직 꽃은 볼 수 없었지만 눈 녹은 산길엔 봄이 오고 있었다. 날씨도 많이 따뜻해졌다. 주차장엔 관광버스로 가득 찼다. 산악회 등 모임에서 월악산 등반을 온 모양이다.
계곡엔 물소리 맑고 나무들은 생기를 찾았다.

1박 2일의 짧은 여정이지만 삶을 애기하고 또한 우정을 다지는 정말 값진 일정 이었다.
자 다시 내년에 만나기를 약속하고 각기 갈 길을 재촉한다.

송계계곡을 따라 충주호 월악 나루터로 접어든다. 충주호 물 푸르고 유람선은 유유히 물결을 가르며 나루터로 들어온다.

금산신문 webmaster@igs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