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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미술관을다녀와서

 간송 미술관은 서울 성북동 울창한 숲속에 있다. 일반적인 미술관이라기보다 연구소에 가깝다. 대지 4,000여평,일제시대 한국의 3대부자라 불리던 간송(澗松) 전형필(全鎣弼,1906~1962) 선생이 33세살때 세운 사립박물관이란다,그는 소유하였던 동대문 밖 많은 농토를 처분하여 귀중한 문화재를 계속 사들였다,서화를 비롯 불상,불구,서적,석조물,도자기등 많은 유물을 보유하고 있단다,국보급 9점,보물12점,서울시 유형문화재 4점등 많은 희귀작품들이 전시되고, 보관되고 있어 문화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미술관이란다.

 하지만 언제든 찾아갈 수 없는 곳이다.간송미술관은 일년에 5월과 10월, 딱 두번만 그것도 15일간만 전시회를 갖는다. 40년전 첫 전시회를 시작으로 금년 5월15일부터29일까지 80회 전시회를 열었는데 이번 전시는"사군자 대전(四君子大展)"이였다.

 간송 전형필선생에 대하여 내가 관심을 갖게 된것은 2010년 작가 이 충렬이 쓰신  "간송 전형필"(김영사刊) 이라는 책을 읽고 난후 부터였다."한국의 미를 지킨 대수장가 간송의 삶과 우리문화재 수집이야기"란부제가 붙은 책이다.

 일본으로 건너간 문화재중에서도 꼭 찾아와야 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서면, 값을 따지지 않고 다시 이 땅으로 돌아오게 했다.그래서 많은 이들은 간송을 "민족 문화유산의 수호신"이라 부르기도 헀고 간송의 수집품을 거론하지 않고는 제대로 된 미술사 연구 논문을 쓸 수 없다고도 말했단다.

 그런 책의 내용을 머리에 담고 부푼 마음을 안고 지인과 함께 간송 미술관으로 향했다. 아침 일찍 출발했다,오랜만에 가는 서울길이라 돌아 볼곳이 많기도 했지만 제한된 기간이라 관람객이 밀려들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는길은 차량 네비게이션에 의지하니 쉽게 찾을 수 있었다.성북초등학교 정문 앞이였는데 주차할곳이 문제였다.인터넷에서 관람기간내에 성북초등교 운동장을 주차장으로 개방 한다는 정보를 읽고 갔는데 그건 오후4시 이후란다.끝까지 확인하지못한 잘못에 다시 차를 돌려 겨우 겨우 주차를 하고 미술관으로 오른다.관람객이 많았다.입장료는 무료였다.

  주변 조경이 남다르다,굵직한 소나무와 빼곡한 조경수,그리고 연륜이 가득한 숲,서울 한복판에 이런 숲이 있다니 정말 놀랄 수 밖에~~~~. 정원 안쪽을 구비구비 돌아 보화각(保華閣)이라 이름 붙혀진 전시실로 오른다.

 1938년 상량식을 마치고 한달후 완공된 건물이 현존하고 있는 것이다.현재의 건물 구조와 시설을 단순비교 할 수는 없지만 당시 설치된 바닥재,벽의 대리석,창문 모양등을 볼때 얼마나 값진 건물이였나를 알 수 있었다.

  4군자대전,1~2층 전시실.매,란,국,죽이 가득 피었다.몇백년이 지나도 그 향기가 그림에 남아 있는 느낌이였다.

  4군자는 당시 선비들의 자기수양이였지 않았을까?  난초 하나치고 글 한줄, 멋지게 써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며 삶의 풍미를 즐기지 않았을까? 두말이 필요없는 추사(秋史) 김 정희의(1786~1856) 난초그림, 단원 김홍도(1745~1806?)의 백매(白梅)그림이 내 눈앞에 머물렀다,그림 자체를 평가 할줄은 몰라도 늘 책에서 자주 접했던 그 이름 때문이리라.

 "매.란,국,죽" 순서는 계절순이란다, 인기순으론 "죽,매,난,국" 이란다.국화가 제일 뒷쪽으로 처진까닭은 먹으로만 그리기에 국화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가 어려웠단다.

 으뜸인 대나무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지니며 곧게 서 있으니 선비의 기상이요,겉은 단단하지만 속이 비어있음은 선비의 도량을 뜻했기 때문이란다.우리선조들의 청빈이 보이듯했다.

 의젓한 대나무,벗같은 매,란,국. 1,2층 전시실을 사람들 흐름에 따라 서성이며 옛 선인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전시장에선  촬영이 금지되여있어 작품을 담을수가 없었기에 입구에서 전시품 도록을 판매하고 있었다

  전시장을 나와 주변을 돌아본다. 5월의 신록과 아직 떨구지못한 봄꽃이 어울어져 멋진 숲을 연출하고 있었다. 소나무,향나무등 고목이 미술관의 역사를 대변하기에 충분하다.사적인 공간이라 접근이 어려운   위쪽엔 후대가 사는 가정집이 낮은 모습으로 예쁘게 자리잡았다.석조 비로자나불좌상,부도,석등,돌탑도 있고 간송의 흉상도 세워져 있었다.용의 머리를 연상케 하는 신기한 고목도 볼 수 있었다.

 울타리 한켵엔 작은 동물원처럼 공작도 있고 닭도 개도.토끼도 있었다.꼭 와보고 싶었던 간송미술관,요즈음의 미술관처럼 유리외벽에 공조설비가 완벽한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 당시의 모습이 남아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 미술관,벌써 가을이 기다려진다, 이번 가을엔 무슨 기획전이 나를 또 오게 만들까? 일년에 두번, 간송미술관에 가야하는 이유다.정문을 나오며 이곳에서 얼마 멀지않은 곳에 자리한 무소유,법정스님이 창건하신 길상사로 향한다.[계속]

   

최한용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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