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맑은 바람, 화창한 날씨, 적절한 기온은 우리들 삶을 즐겁게 하고 좋은 날씨만큼이나 결혼도 시즌을 맞았다.
토. 일요일 결혼식을 알리는 청첩장이 줄을 잇고 이 예식장 저 예식장을 번갈아 찾기도 해야 하고 때론 집사람과 따로 따로 참석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제 내 자식도 성장해서 결혼 적령기가 되다보니 친구들도 모두 같은 처지가 되여 가을날 단풍구경보다 예식장 간판구경을 더 해야 되나 보다.
그래도 이곳지역에서 거행되는 예식은 크게 문제되지 않지만 먼 타 지역 결혼식에 갔다 오려면 비용도 문제지만 황금 같은 휴일 하루를 도로위에서, 차 속에서 보내야 하는 고충이 따른다. 내심 한편으론 가는 사람 편에 축의금이나 보내고 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우리나라 풍습상 그렇게 할 수도 없고 갑갑할 때가 한 두번이 아니다.
지난주 일요일 청주시내 「H」웨딩홀 13:30. 친구의 아들이자 우리 회사 직원인 「K」군의 결혼식이 있었는데 내가 주례를 서게 되였다.
몇 개월 전 친구를 만나 간단히 술 한잔할 때 농담조로 말한 것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주례를 맞는 계기가 되었다.
그동안 가끔 직원들의 요청은 있었지만 아직 그 자리에 설만한 자격이 되지 못한다고 극구 사양해 왔었는데, 어쩌다 보니 대체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일단 주례를 선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조급하고 꽤나 신경 쓰이는 것이 사실이었다. 주례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내빈들도 많은데 실수는 하지 않아야 하는데…
되도록 간결하게, 깔끔하게, 매끄럽게 진행해야 할 텐데 하는 온갖 걱정이 머리를 꽉 메우고 있었다.
한편으론 글쎄 내가 그 자리에 설만한 사람이 되는가도 생각해 보았다. 무릇 주례라고 하면 사회적으로 덕망도 있어야 하고 인품도 갖추어야 하고 모든 삶에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그리고 연배도 어느 정도 되어야 하는 것인데 스스로 생각해 보니 너무 부족하기만한 자신이었다. 하지만 주사위는 던져졌고 시계는 일요일을 향해 쉼 없이 흐르고 있었다.
긴장과 초조속에 일요일 아침 해는 밝았다.
혹시 있을지도 모를 교통 체증을 우려해 1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지만 두 시간 전에 집을 나섰다.
차를 운전하고 가면서도 머릿속에는 예식장이 그려지고 입으론 중얼 중얼 주례사 연습을 한다.생각대로 잘 되지 않는다. 일요일 오전이라 그런가 차는 막힘없이 달리고 청첩장 교통 안내도를 따라 흐르니 저 만큼 예식장이 보인다. 역시 예식장 근방 도로는 차로 꽉 메워져 움직일 줄을 모른다.
예식 마치고 빠져나가는 차량과 예식시간에 맞추어 새로 들어오는 차량, 그리고 대형 버스로 온 하객들이 내리느라 시간이 지연되고 좁은 이면도로 한켠은 주차장으로 변해 교행하는 차량들이 어렵게 드나들다보니 시간이 지체될 수밖에 없다.
예식장 주차 안내 요원과 교통 경찰관들이 땀 흘려 호루라기 불면서 정리하지만 워낙 많은 차량들이 몰려 소통에 어려움이 있다. 각자가 서로 조금씩 양보하면서 질서를 지키면 더 잘 소통될 것인데 모두가 남을 배려하기보다 자기만 바쁘다.
그래도 나는 일찍 서둘러 출발했기에 조금은 여유롭다. 아직 예식 시작까지는 1시간의 여유가 있다. 느긋하게 기다리니 주차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운 좋게 내가 주차장에 진입할 때쯤 1대가 빠지고 있어 자리가 생겼다.
서두르면 더 막히는 법. 누가 말했던가 그런 것을 보고 우리는 “머피의 법칙”이라 했다.
예식장에 들어섰다. 아직 진행중인 앞 팀이 끝나지 않았다.
많은 사람들이 계단을 오르고 내린다. 대부분 사람들이 신랑, 신부 접수 대에 축의금을 접수하고 혼주되는 이들과 인사 나누고 오늘의 주인공에게 축하의 말을 해주고 결혼식장안에 참석해서 축하해주기보다 피로연 장소로 향한다. 요즈음 바뀐 결혼식 풍경이다.
우리 결혼할 때만 해도 모든 하객들이 결혼식을 지켜보고 끝나면 지정된 피로연 장소로 이동했는데 요즈음 식장에 남아 있는 사람들은 주로 양가 친·인척, 그리고 신랑 신부 친구들이 대부분이다. 예식 종료 후 사진을 찍기 위함일지도 모르겠다.
예식 준비를 한다. 신랑을 만나 사회자 소개를 받고 식순을 확인하고 주위를 둘러본다.
조명이 화려하다.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에 앉기 시작하고 안내원이 신랑과 양가 어머님에게 식에 대한 설명을 해준다. 일종의 예행연습이다.
결혼식도 프로그램화되었다. 시작을 알리는 사회자의 방송이 있고나서 뒤에서 P.C를 누르면 프로그램에 따라 멘트가 흐르고 조명이 재 점등된다.
우렁찬 음악소리와 함께 신랑입장이 시작되고 예식은 시작 되었다.
주례석에서 내려다본 하객들. 조금은 당황스럽지만 스스로 다짐한다. ‘천천히 그리고 느리게 느리게 해야 한다고’
피아노 선율타고 이날의 주인공 신부가 가장 예쁜 모습으로 아버지의 손에 끌려 한발 한발 발을 옮긴다.
웨딩드레스가 화려하게 펼쳐지고 주위는 조용해졌다.
대기하던 신랑이 아버님께 꾸벅 절하고 신부를 맞는다. 혼인서약, 성혼 선언문이 낭독되고 주례사가 시작된다.
나는 어떤 틀에서 격식화된 말보다 실제 인생의 선배로써 먼저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3가지만 말했다.
첫째. 신뢰를 기본으로 한 사랑이다.
서로 만나 사랑하고 이제 새 출발하는 신혼부부에게 사랑처럼 좋은 문구는 없다.
하지만 살다보면 늘 달콤한 분위기만 이어지는 것이 아니다. 때로는 갈등도, 고민도 후회도 따를 수 있다. 하지만 서로가 서로를 믿고 의지하고 이해하며 서로를 아껴주고 보듬어 주어야 한다.
둘째. 행복한 삶을 누려야 한다.
행복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다. 부자라고 다 행복하고 빈자라고 다 불행한 것은 아니다. 행복은 한자 아래 서로의 가슴속에서 피어난다.
서로가 서로를 남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용서하는 마음속에서 행복은 늘 싹튼다.
셋째. 건강해야 한다.
재물을 잃으면 잃는 것만큼, 명예를 잃으면 아주 많이 잃어버리지만 건강을 잃으면 전부를 잃어 버리는 것이다.
이제 새 삶을 시작하는 신혼부부에게 무슨 건강 얘기냐고 되물을 줄 모르지만 건강은 건강할 때 지켜야 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몸의 이상을 느꼈을 땐 이미 한참 늦은 뒤가 될 수 있다. 건축공사와 지식도 기초공사와 기초 학문이 중요하듯이 젊었을 때부터 건강도 챙겨야 한다.
주례사를 마치고 양가 부모님들께 신랑 신부가 큰절을 올릴 차례다. 예쁜 신부 눈에 이슬이 맺혔다. 감정을 억제하기 힘든 모양이다. 사람은 웬일일까? 슬퍼도 눈물이 나지만 기뻐도 눈물이 흐른다. 예식의 절차는 끝나고 힘찬 행진만이 남았다. 신랑 친구들의 주문이 들어왔다.
어 부인께 평생 잘하겠다는 의미로 만세 삼창을 하란다.
신랑의 우렁찬 만세소리는 식장을 제압하고 이어지는 행진 속으로 폭죽이 터지고 스프레이 세례가 이어진다.
주례와 함께 사진 촬영이 끝나자 긴장했던 시간은 마감되었다.
간결하게, 깔끔하게 하려고 노력했는데 평가는 하객들의 몫이다. 잘했는지, 잘못했는지는 나는 모른다. 이번 주례로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나도 남에게 주례를 부탁드려 결혼식을 올렸으니 이제 그 품앗이를 했다고 하면 잘못된 표현일까?
돌아 오는 길. 날씨 화창한 가을날의 햇빛 받으며 코스모스는 바람 따라 물결치고 자동차소리도 경쾌하다. 자신의 마음도 한결 가볍다.
긴장되었던 시간이 지났기 때문인가 보다. 이렇게 해서 일요일 하루 결혼식 주례는 마칠 수 있었다.
오늘 결혼식 주례를 서면서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사랑으로 만난 두 사람은 무수한 기적을 만들 수 있지만 그중 가장 위대한 것은 가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결혼이 신성한 이유는 이 경이로움에 있다고 본다. “이제 함께 가겠습니다.” 하면서 정답게 팔짱끼고 행진을 시작한다. 비록 몇 발짝 안되는 짧은 거리지만 그 첫걸음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모든 사람 앞에서 동행을 약속하며 내걷는 첫 걸음이기 때문이다.
서로를 기댈 수 있는 보호자로, 아니 삶의 동반자로, 험난한 인생의 길을 함께 할 것을 만인에게 공표하고 약속하고 승인 받는다. 그저 한방에서 같은 이불 덮고 잠만 자는 것이 아닌 영원한 동반자로, 삶의 배려자로, 또는 가족 구성원으로 살아갈 것을 약속하는 장엄한 의식이다.
결혼 생활은 즐거움도 크지만 어려움도 많다. 서로 서로 자라온 어린시절, 성장시절의 환경이 다른 남남으로 만나 새로운 나를 찾아가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결혼 생활은 늘 핑크빛만이 아니다.
배려, 희생, 용기, 겸손이 필요하고 때론 가족 구성원에게 사랑이란 끈질긴 노력과 자기희생을 강요받는 일방적인 생활처럼 느껴질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도 이혼율이 폭발적으로 늘고있다는 언론 보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전에는 동방예의지국이니 벙어리 삼년, 눈감고 삼년, 입 다물고 삼년, 살면서 시집갔으면 그 집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옛 노인 분들의 얘기를 많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살다가 서로 마음에 맞지 않으면 그저 툭툭 털고 미련없이 헤어지며 도장 찍는다. 너무 가볍게 생각하는 요즈음 세태가 걱정스럽다.
대부분 이혼사유는 성격차이, 다음이 경제 문제라고 한다.
누군가가 얘기 했다. “결혼은 참는 수업을 전제로 하는 것이고 부부사이는 1%의 애정과 99%의 대화로 구성 된다고”
대화에는 인내가 절대적인 동시에 필수다.
스스로 조금 참고, 다시 이해하고, 상대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하고 지금보다는 내일의 희망을 꿈꾸며 서로가 서로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보듬어 주면서 의지하고 믿고 살아간다면 다소 어려운 경제문제도, 삶의 고통도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모든 것들은 사랑이라는 아름다움만으로 덮어질 수 있다. 서로가 서로를 사랑하며 인생을 즐겁게, 유쾌하게,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것, 뭐 그런 것들이 행복 아닐까 싶다.
오늘 결혼한 선남선녀 두 분.
백발이 성성하도록 아름답게, 사랑스럽게 살아주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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