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중을 통해 다시 밝혀지는 역사들 -
산골마을 금산이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가장 큰 기록은 삼국시대의 최전방으로, 임진왜란의 최대 격전지로서일 것이다.
역사를 추정할 수 있는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도 몇몇 대유(大儒)들이 금산읍에서, 제원 용화에서, 남일 초현에서, 그리고 진산 등지에서 교류를 갖고 후세를 교육시킨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평화로운 시대에 우리 선조들의 자세한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들을 많이 갖고 있지 못하다는 아쉬운 생각을 나는 떨칠 수가 없다.
그렇지만 누대(累代)에 걸친 지역의 몇몇 명문가에서 귀중하게 보관한 족보와 서적을 통해, 혹은 구전(口傳)을 통해 전해 내려온 여러 채널의 지식들을 정리해서 금산의 문화와 이 땅에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맑은 삶의 향기를 찾을 수 없을까 하는 바람으로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진산면 지방리가 고향이면서 문화 류씨의 뿌리를 금산의 역사와 연관해서 평생 파헤쳐 온 류흥수 장로는 수십년에 걸친 당신의 연구 결과물을 작년에 ‘금산역사문화연구 제3편’에 게재한 바가 있다.
나의 견해로는 류장로의 발표결과가 금산지역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하나의 계기가 될뿐더러 진산지역의 위상을 높이고 나아가 금산 전체의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하다.
이런 의미에서 금산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 연구의 내용을 알아둘 필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류장로의 허락을 얻어- 그 연구결과를 간략하게나마 발표하고자 한다.
물론 집안에서 구전되어 내려온 조상의 전언(傳言)과 혼맥(婚脈)을 비롯한 당신 집안의 역사와 당신과 당신 조상의 종교인 천주교/기독교에 대한 기록이 많기 때문에 다소 한쪽으로 치우친 것은 아닌가 하는 문제 제기를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의 고대 문화 중 불교와 연관되지 않은 것을 찾으라고 한다면 한참을 망설여야 할 정도이고, 조선시대 유물 중에서 유교와 관련없는 물품이 없듯이 근세사에서 외세의 침략과 그에 대응하는 조정과 민초들의 저항에서 천주교/기독교 전래사를 빼놓고는 아무 얘기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역사적 당위성을 금산신문의 독자 여러분들은 이해해 주실 것으로 믿는다.
아울러 지역의 몇몇 명문가들의 혼맥을 비롯한 교류가 역사의 흐름에 중요한 요소를 점하고 있기 때문에 금산의 역사를 얘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몇몇 집안의 족보까지 들추게 되는 실례를 범할 지도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도 미리 양해의 부탁말씀을 드린다.
- 조선 중기의 상황 -
임진왜란은 조선조 500년의 역사 중에서 가장 큰 사건이기도 했지만, 조선이라는 나라의 국체(國體)가 뿌리째 흔들리는 최대의 위기이기도 했다.
평민과 상민들이 나랏님과 양반네들을 모시는 이유는 자신들이 어려운 위기에 처할 때 앞장서서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는데, 막상 위기가 닥치자 왕과 측근의 대신들부터 압록강변 의주까지 단숨에 36계 줄행랑을 치는 것을 보고 백성들은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임란 당시의 임금인 선조는 이 최대의 위기를 공권력을 강화하는 것으로 -정치적으로는- 간신히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백성들의 분노까지 잠재울 수는 없었다.
숙종에서 영·정조로 이어지는 개혁의 시대에 왕이 주도가 된 많은 사회의 발전이 있었지만 젊은 학자들 사이에서 실학으로 대표되는 개혁정신을 담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정조 이후 조선은 계속 내리막길을 걷다가 결국은 을사보호조약을 맞게 된다.
이 시기에 중국을 통해 전래된 천주교는 당시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새로운 사상이었기 때문에 조정의 엄격한 통제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최초의 순교자가 나오게 되는데, 이 순교의 현장이 바로 금산이라는 것은 대단한 역사적 의미가 있는 것이다.
금산에서의 천주교 순교사와 기독교 전래사를 총정리한 류흥수 장로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늙어가면서 내 자녀들에게 큰 유산(遺産)을 주지 못하지만 우리나라와 내 고향 진산 지역과 가문에 전승된 예수교 수용사(受容史)의 내력을 개략만이라도 정리하고 싶었다.
부모님으로부터 구전(口傳)된 문중사(門中史)와 가승보(家乘譜)에 담겨진 선조들의 역사 기록들을 모아 당쟁(黨爭)에 연루되어 희생되고 엉켜진 피 흘림의 가문사와 슬픈 생존사를 찾아 정리해 보고 싶었다.
그 중에서도 내 고향이자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순교자를 배출한 성지(聖地)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진산군 서면의 지방리에서 일찌기 창립된 자생적 기독교 수용사를 정리해 보고자 했다.
특히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권상현 두분의 묘소를 아직까지 발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해결해서 종교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진산이 중요한 고장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나의 바람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 기독교의 약사(略史) -
동양의 마지막 땅인 유대나라에서 예수님이 진리를 설파하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성립된 기독교는 어쩌면 작은 지역의 종교로 사라졌을지도 몰랐을 것이라는 것이 많은 역사학자들의 견해이다.
이 기독교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 중에서도 가장 많은 신도와 조직과 영향력을 가진 종교로 발전하는데 있어 가장 큰 공을 세운 이는 로마제국의 콘스탄티누스 황제이고, 이 은혜를 기독교도들은 황제가 아닌 대제(大帝, The Magnus)라는 극존칭을 붙임으로써 갚았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말고 또 대제로 불리는 사람은 현재 프랑스와 독일과 이탈리아를 아우르는 대제국을 만든 프랑크제국의 샤를마뉴 대제(마뉴라는 말이 이미 대제라는 뜻이라고 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서울역전앞이 되고 말았다)밖에 없으니, 대제라는 호칭은 대단한 높임이 아닐 수 없다.
서기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는 밀라노 칙령을 내릴 당시 기독교도는 인구의 5%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현재의 유럽에 해당하는 로마와 갈리아, 게르만 중에는 신도가 별로 없었고, 현재의 터키와 북아프리카에 해당하는, 말하자면 당시로서는 변방에서만 믿어지는 종교였다고 한다.
공인 이후 급속도로 그 세력을 확대한 기독교는 교리 문제로 대단한 격론이 벌어지는데, 로마제국 전체가 ‘예수님을 신(神)의 범주에 넣어야 한다’는 아타나시우스파, 즉 삼위일체파와 ‘예수는 어디까지나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아리우스파로 갈라진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서기 325년에 니케아에서 열린 공의회에서 삼위일체파의 손을 들어주자 비주류로 몰린 아리우스파는 지금의 독일에 해당하는 게르만과 같은 변방으로 선교의 힘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들은 중국에까지 선교의 손을 뻗쳐서 경교(景敎)라는 이름으로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세에 접어들어 로마 교황의 힘이 유럽 주요 국가들의 왕을 압도하고 여러 나라들이 식민지 경쟁을 벌이는 소위 제국주의 노선이 일반화되자 기독교의 선교는 군대의 총칼과 함께 세계로 뻗어나가게 된다.
삼위일체파의 중국 선교는 서기 1294년에 시작되고 1549년에 일본에 선교사가 파견되는데, 우리나라를 처음 방문한 선교사는 우습게도 임진왜란 당시인 1593년에 일본군 중의 신자들을 위문하기 위해서 왔다는 것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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