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에 전래된 예수교 -
한국에 전래된 예수의 족적을 찾으려는 많은 학자들이 최초의 역사를 얘기하고는 있지만 초창기의 자료들은 대부분이 단편적으로 서술되어 있으면서 지속적인 선교의 기록이 없어 자세한 설명이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병자호란 이후에 작은 기록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1636년에 발발한 병자호란으로 인해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예수회 소속의 독일인 선교사 아담 샬(Adam Schall)을 비롯한 서양선교사들과 친교를 유지하면서 서양의 과학과 문물을 접하게 된 소현(昭顯)세자는 귀국하면서 천주교 신자인 환관과 궁녀들을 데리고 온다.
그렇지만 소현세자가 귀국한지 두달여 만에 34세의 나이로 급사를 하게 되자 이들의 귀국이 선교로 연결되지는 않았다(일설에 의하면 소현세자는 독살된 것으로도 나온다).
1660년, 중국의 베이징에 천주교 남경교구가 설립되면서 조선까지 관장하게 되었다는 기록을 보면 조선시대의 많은 지식인들이 새로운 학문에 굶주린 나머지 중국의 서학(西學, 서양학문)에 관심을 갖고 있었고, 천주교가 이들의 학문적 욕구를 충족시키는 대상이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18세기 초에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남인들을 중심으로 당시로서는 새로운 학풍인 서학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이 분야의 대표적인 학자로 반계(磻溪) 류형원(柳馨遠), 성호(星湖) 이익(李瀷),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등을 꼽을 수 있고, 이들은 실학과 서학의 연구로 주자학 만능의 사상계에서 큰 파문을 일으키게 된다.
당시 천주교는 종교나 신앙이라기보다 하나의 ‘새로운’ 학문으로서 받아들여졌으며, 젊은 유생들은 서학에 관한 서적들을 숨겨 돌려가면서 읽는 것을 넘어 왕실 서고에 소장된 신간 외국 서적을 읽지 못하면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으로 스스로 개탄할 정도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당시의 지식적 젊은이들에게 서학은 새로운 돌파구였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 서학(西學)과 실학의 연계-
당시의 젊은 지식인들이 실학운동을 하면서 서학에 자연스럽게 접촉할 수 있었던 것은 임진왜란 이후에 나타난 사회적 혼란과 이를 지키기 위해 더욱 주자학 중심의 체제를 강화한 것에 대한 반작용, 그리고 -우물안 개구리 시절이라 정확한 정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이제 막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 새로운 세상에 대한 동경이 합쳐진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조선 중기의 태평세대라고 후세에서 평가하는 영·정조 시대에 실학운동이 발전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겠지만, 곧 역풍을 맞게 되면서 천주교도 같은 구박을 받게 되어 요학(妖學), 사학(邪學) 등의 이름으로 불리면서 배척당하기 시작하였다.
- 천주교 역사와 금산 -
1784년에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승훈은 조선 최초의 기독교(천주교와 개신교를 망라한 호칭으로 이해해 주기 바란다) 신자로 역사에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곧 이어서 같은 해 가을에 진산면 초남리에 살던 류항검(柳恒儉)이 경기도 양근의 권일신(權日身)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교인이 됨으로써 금산에서의 기독교 역사는 시작된다.
이런 기록으로 볼 때 금산의 선교사(宣敎史)는 대단히 역사가 깊고, 금산이 중앙에서 멀리 떨어져 정보와 문화발전의 속도가 느린 시골마을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대단히 앞서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인연이 다행(금산이 역사의 중심지가 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의미에서)인지 불행인지를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들의 개인적 성향에 맡길 수밖에 없는 끝없는 순교(殉敎)의 역사가 금산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던 바로 그 해 겨울에 진산 막현리에 살던 윤지충은 서울 중구 명례동(明禮洞, 현재의 명동)에 사는 김범우의 집에서 천주실의와 칠극 대전이라는 당시로서는 첨단의 과학과 사상을 접하면서 스스로 천주교 신자가 되었다.
그리고는 이듬해인 1785년에 을사추조적발(乙巳秋曹摘發) 사건이 일어나는데, 명례방 신도들이 도장(道場)을 열고 있던 중 관리에게 잡혀 양반들은 훈방되고 역관출신 김범우는 단양으로 귀양 가서 2년 후 그곳에서 사망한다.
- 윤지충이 천주교에 입교한 동기 -
우선 당시 선비 덕목의 으뜸이던 벼슬로 나라에 봉사하는 기회를 얻지 못한, 다시 말하자면 정권에서 소외된 남인 계열의 지식인으로서 세상에 대한 불만이 있었을 것이다.
윤지충은 고산 윤선도의 7대손으로, 대대로 남인으로 살아오면서 서인과의 투쟁을 벌였던 바, 정약용, 권상연, 류항검 등과 혼맥으로, 그리고 정치적 당색으로 맺어진 가문들인데,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학문과 정보의 교환과 토론이 같은 당파 간에만 이루어졌기에 대부분의 양반 출신 신도는 남인이었다는 사실도 크게 작용했을 것으로 이해된다.
- 천주교 박해의 원인 -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선교사들이 이승훈에게 “만일 귀국하여 임금이 신앙을 버리라고 강요할 경우 어떻게 할 결심인가?”하는 질문을 하였을 때, “진리를 명백히 아는 이 종교를 버리기보다는 차라리 모든 형벌과 죽음까지 감수하겠다고”는 대답을 하였다고 전해지는데, 이 문답으로 미루어볼 때 천주교의 박해는 예정되어 있던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권을 잡은 사람의 입장에서 천주교를 인정을 하게 되면 지금까지 유교적 통치체계와 가치규범이 무너지는 사회적 변동이 일어나게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다.
그리고 여호와가 세상을 창조하였고 천당과 지옥이 존대한다는 등의 기독교 교리는 주자학의 이기론(理氣論)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사상이었던 데다 천주교가 전통사회 질서와 도덕적 기반을 파괴한다는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는 당시의 사회구조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을 것이다.
유교사회는 효(孝)의 개념이 충(忠)으로 연장되기에 충과 효는 유교사회 최고 가치의 덕목(德目)이었지만 천주교는 천주가 인류의 부모인 대부(大父)이며, 우주의 임금인 대군(大君)이라 하여 지상의 최고 권위임을 강조하면서 부모와 군주의 권위는 상대적으로 격하시켰기 때문이다.
(다음 주에 계속됩니다)
# 지난 주 게재한 글에 착오가 있어 ‘문화 류씨’를 ‘진주 류씨’로 교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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