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산(錦山)이 금수강산(錦繡江山)의 준말이라는 것은 금산 사는 사람은 모두 알고 있는 얘기이다. 가끔 외지에서 방문하는 인사들도 이 말을 들으면 굉장히 인상 깊은 모양이다. 인사말에서 ‘금산은 금수강산’이라는 말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그렇지만 그 아름다운 풍광을 감상할 줄 아는 안목이 없고 그 풍광까지 접촉할 수 있는 길이 없다면 금수강산은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있어도 그릇이 없으면 담을 수 없고 수저가 없으면 맛볼 수 없는 이치와 같다.
작년 말부터 금산문화원의 안용산 사무국장이 보물인 구슬을 꿰는 실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고, 금산역사문화연구소가 그 노고를 자청하고 나섰다.
안희정 충남도지사가 당선자 시절에 금산문화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그 동안 금산문화원이 지역 문화의 발굴과 창달에 기여한 바에 대한 설명을 듣고 격려해준 것이 계기가 되었다. 충남도청의 예산 지원이 있었고, 박동철 군수와 김복만 의장이 마치 자신들의 일인 양 좋아하며 도와준 것도 큰 힘이 되었다.
지역마다 무슨무슨 길 만드는 것이 유행인 것도 자극이 되었다. ‘저런 동네마저도 무슨 길을 만든다고 하는데...’ 하는 책임의식도 컸다. 아마도 질투심도 조금은 있었을 것이다.
대전에서 대청호 주변에 명품 길을 만든다고 하면서 엄청난 예산을 들여 10개 가까운 길을 한꺼번에 만들어놓고 소화불량에 걸렸다는 소식은 타산지석이 되었다.
우리는 저예산에 진짜 명품 하나만 만들기로 했다.
- 술래길의 탄생 -
그 길의 이름은 ‘술래길’이라고 정했다. 술래잡기의 그 술래이고 강강술래의 그 술래이다. 감추어져 있는 것은 귀한 것이고, 숨은 술래를 찾으면 귀하기에 잘 보존하고 또 발전시키면서 즐길 수 있는 대상인 명품길이라는 의미이다. 술래길의 작명가는 안용산 금산문화원 사무국장이다. 새로운 사업을 하거나 단체를 만들 때 언제나 기가 막힌 작명을 하는 ‘습관(?)’이 있다.
처음 술래란 이름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은 ‘어리둥절’이었다. 그리고 조금 지나서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너무나 평범한 이름 아닌가.
그런데 신기하게도 시간이 지나면서 술래길이라는 이름이 점차 익숙해지고 좋아지기 시작했다. 귀인을 만나야만 좋은 사람을 만난 것은 아니다. 가까이 있는 사람 중에도 친구가 있고 나를 가르쳐줄 선생님이 있는 것과 같은 이치 같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술래길이라는 너무나 평범해서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가졌던 사람들도 익숙해졌다. 이후로 명칭에 토를 다는 사람은 없어졌다. 오히려 반기는 눈치였다.
전술한 바와 같이 술래길은 하나만 만들기로 했다. 한꺼번에 여러 개의 술래길을 만든다면 시작이 힘들고 늦어질 뿐만 아니라 귀한 만큼의 대접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술래길은 경치도 좋고, 가족끼리 걷기도 좋으면서 생태적으로, 또 역사적으로 의미가 깊은 길이라야 했다. 첫 번째 길은 칠백의총에서 금성산 정상까지 올라가는 길을 택했다.
금산 사람들은 익히 잘 알고 있는 길이다. 봄에는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꽃동산인데다가 칠백의총이 기점이기 때문에 충절의 고장 금산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길이다. 438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산이라 아이들과 함께라도 오르기 쉬울 뿐 아니라 주변 경관이 훤히 보이기 때문에 삼국시대 이전부터 성곽이 있던 방어의 요충이자 격전지였다고 믿어진다.
낮은 지형을 감안한다면 어떻게 그 멀리까지 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 정도로 전경이 훤하다. 교통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옛날에는 봉화대가 있어 정보를 교환했다고도 한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인데도 봉화대가 있었다는 것은 다소 의외의 일이다.
내친 김에 금성산 정상에는 금산에 있는 20여 개의 성을 표시한 지도도 세워 놓았다. 금산이 삼국시대에는 백제와 신라의 DMZ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금산 땅 대부분이 백제에 속했지만 일부 지역은 신라군의 최전방이었단 곳도 있다.
서로 나라를 멸망시킬 정도로 많이 싸웠던 원수들도 세월이 흐르자 한 동네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무릇 편가름이란 것이 시간의 강물을 타면 아무 의미 없다는 얘기를 들려준다.
여러 이정표와 안내판을 세우는 과정에 금산역사문화연구소 회원들이 비 맞아 가며 땀 흘려 땅을 팠다. 황경록 사무국장은 사무처리 하고 대전 문화방송에 연락해서 홍보하는 등의 뒷바라지 하느라 많은 고생을 했다. 안용산 사무국장과 전병만 사업과장, 그리고 석헌숙 간사는 정상까지 안내판과 시멘트를 지고 나르느라 엄청난 고생을 했다. 개막식 날 참석자들이 요기할 음식을 정상까지 나르느라 박기옥 재무와 문정우 회원은 정상을 몇 번씩 오르내리는 고생을 했다. 오종록 회원도 아들과 함께 고생 많이 했다. 임문익 직전 사무국장은 작은 냉장고 만한 카메라를 들고 기록을 남기기 위해 땀을 흘렸다. 그리고 보니 술래길 안내판 설치하고 명명식 준비하는 데 있어서 김면성 부소장을 비롯한 금산역사문화연구소 회원 32명은 누구의 공이 더 크다고 하기 힘들 정도로 힘을 합쳐 노력해주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명색이 소장이라는 나만 괜히 왔다 갔다 했을 뿐, 한 일이 없다. 원래 가진 재주도 없고 할 줄 아는 일도 없는 탓이기도 하다.
- 금성산 술래길 명명식 -
‘금성산 술래길’ 명명식이 지난 5월 14일에 있었다.
칠백의총 입구에서 간단한 행사를 치렀고, 박동철 군수와 김복만 의장을 비롯한 많은 지역의 어른들이 함께 해주었다. 많은 지역 주민들이 가족과 함께 참가해서 정상까지 산행을 했고, 황의호 교육지원과장과의 인연으로 보령문화연구소 회원들 수십 명이 함께 해주어서 더욱 빛이 났다. 이 분들은 정상에서 내려와 금산의 유서 깊은 지역들을 모두 답사하고 많은 얘기들을 나누고 아주 행복한 마음으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를 나중에 전해 들었다.
대전 MBC에서 현지 촬영을 했고, 며칠 뒤 아침 시간에 방영해 주어 고생한 사람들에게 작은 보람을 준 것도 너무 고맙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시기를 잘 못 잡아 철쭉꽃이 모두 진 다음에 걸었다는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꽃이 좋았다고 하는데...
금성산 술래길 7km를 걸으면서 건강을 생각하고 이 땅에 살았던 선인들의 삶을 생각하고 앞으로의 미래에 대해 사색하는 귀한 시간을 많은 사람들이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앞으로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를 배출한 지역으로서 ‘순교의 길’이라든가 동학 최초의 기포자리는 역사적 사실을 다시 되새기는 ‘동학의 길’, 또는 임진왜란 당시 왜군의 행적을 따라가 보는 ‘침략의 길’과 같은 술래길들을 찾아내고 싶은 소망을 갖고 있다.
금산에는 아직도 숨어있는 보물들이 많이 있고, 술래잡기를 해서라도 그 보물들을 찾아 세상에 내놓고 보존하고 또 즐기는 작업들이 간단없이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그 과정에 그늘에서 고생하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까지 생각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 같다.
김호택 webmaster@ig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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